동구권에 태권도를 보급하자|박춘규<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상사회의 한 전형으로 한때 동구권을 풍미했던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국가(소련등)의 자존심은 물론 구성원 개개인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실패한 동구의 선택은 서구화의 길뿐으로 여겨져 서구화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서구화의 길은 처음에는 쉽게 보였지만 사실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기술과 장비가 없이 수백m벼랑의 암벽등반을 해야하는 것과 같았다.
개혁·개선은 말뿐이고 해가 바뀌어도 서구화는 요원한게 현실이다. 소리는 요란한데도 어려운 나날은 계속되니 불만은 쌓여만가고, 드디어 실망감·좌절감으로 번져 동구사회는 무감각·무희망이 만연하는 극한 상황에까지 치닫게 됐다. 그들의 좌절감은 서구에 대한 시기·분노·광적인 파괴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독일 젊은이들 사이에 신나치주의가 번지는 것도 이러한 분노의 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동구권의 좌절감은 구동독에서부터 소련·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인도및 아랍권까지 확산되고 있다. 모두 동일한 좌절과 불만의 공통분모를가진 지역이다. 신나치주의·신민족주의가 확대생산될 소지가 크다.
이때문에 동구권의 좌절감이나 광적인 파괴욕구를 순화시킬 힘이 필요하다. 갑작스린 문화의 충격과 공백으로 과격주의·신나치주의등을 하나의 탈출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구권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질서, 혈기의 새로운 발산방법으로 태권도 보급을 제안하고자 한다.
태권도는 개개인으로보면 정신의 통일, 자기수양, 신체의 힘과 기술의 연마이며 사회적으로보면 일정한 규율과 구령에 의해 단체·조직·질서의 유지 존중이며 사회심리 전체로 보면 스포츠를 통한 불만의 발산이기도 하다. 또 종주국 한국은 경제발전의 모범국이며 따라서 「태권도+새마을정신」교육은 동구권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기본 요소가 다 들어있다. 불만의 해소방법과 건설·개발의 지름길이 모두 제시돼 있다.
태권도의 보급여건은 동구권이 의외로 좋다. 과거 사회체육개념에 의한 스포츠센터가 많이 있고 학교등 기존 시설이 많기 때문에 시설이 충분하다. 인적자원이 문제이나 군복무 대신 태권도 보급관으로의 파견을 고려할만하다.
먼저 정부차원에서 문화·체육협정을 맺고 파견 교관의 주거대책과 신변안전을 상대국으로부터 보장받는 순서가 필요할 것이다. 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 개도국에 파견돼 문화협력을 담당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따라서 사업명도「태권도」라는 말보다 「새마을 봉사단」(Saemaul Corps)이 좋겠다.
태극기 앞에 경례로 시작, 한국말로「차렷」「하나 둘」을 외치는 태권도가 동구권에 널리 보급될때 한국과의 경제협력·관광확대가 큰 결실을 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