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브레진스키 저 『20세기말의세계혼란』|개도국산업화 "세계 안정 위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세계의 석학들은 미국주도의 항구적 신세계질서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과거 산업화가 서유럽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아시아등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가 세계 평화를 앞당길 것이란 주장을 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미존스 홉킨스대교수가 최근 발표한 『통제불능 :20세기말의 세계 혼란』(찰스 스크리브너스 선즈간)은 정계와 학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미 카터행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20세기 전세계에서 1억6천7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정치학살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의 내용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가 몰락한데 이어 세계는 의회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안정된 세계질서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계속되는 핵확산·인종갈등·각 국간 빈부격차·개발도상국의 급속한 산업화가 오히려 새로운 투쟁의 씨앗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레진스키와 낙관론자들간에 가장 두드러지는 시각차이는 구공산권과 개발도상국의 폭발잠재력과 평화와 번영을 다른 지역국가들과 공유하려는 서구 민주국가의 의지에 대한 분석에 있다.
낙관론자들은 장래 개발도상국들의 폭발가능성을 낮게 보고 서구 국가들의 평화공유 의지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반해 브레진스키는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도·중국등 전통적인 사회가 산업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격변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과거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같은 「광적인」체제가 대두한다는 것이 브레진스키의 설명이다.
그는 또 구소련권 국가들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는커녕 안정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현재 풍요를 누리는 서구 각국이 후진국국민들과 고통을 분담한다해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통신기술의 발달로 후진국 국민들의 소외감만 더 깊게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일본·중국의 장래에 대해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 브레전스키의 이 저서는 앞으로 빌 클린턴미행정부의 외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명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