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올 과징금 벌써 작년의 3배 … 사상 최대 부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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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4개 정유사 526억원, 10개 석유화학사 1051억원, 10개 손해보험사 508억원, 6개 건설사 221억원, 3개 제당사 511억원…’.

업계의 영업이익을 나열한 수치가 아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들에 물린 과징금이다. 공정위가 올 들어 부과한 과징금은 이달 22일까지만 3294억원이다. 이미 지난해(1105억원)의 세 배에 가까운 사상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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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검찰’ 공정위의 서슬에 업계가 움츠러들고 있다. 과징금은 세금처럼 미리 준비해둘 수가 없다. 나중에 경비 처리도 못 받는다. 이 때문에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은 세금보다 훨씬 무겁다. 일각에선 과거 물가 관리나 과당 경쟁 예방이란 명목으로 정부가 했던 행정지도까지 공정위가 ‘담합’이란 죄목으로 단죄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천문학적 과징금에 업계 반발=공정위는 22일 CJ·삼양사·대한제당이 1991~2005년 설탕의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5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3개사가 시장점유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로 짠 뒤 설탕 공급을 조절해 가격을 부풀려 왔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담합행위를 자진 신고한 CJ를 뺀 2개사는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이뿐이 아니다. 연초 공정위는 4개 정유사와 10개 석유화학사에 15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두 건만으로 지난 한 해 과징금 총액을 훌쩍 넘겼다. 이어 건설사·손보사까지 손을 봤다.

여기에다 포털의 부당행위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학원 체인에 대한 조사도 인력만 확보되면 바로 시작한다는 게 공정위의 방침이다. 공정위가 이처럼 경제 ‘군기반장’역을 자임하고 나선 건 권오승 위원장의 뜻이다. 그는 연초 “올해는 민생 관련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데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 과징금에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특히 유화·건설업계는 경기 부침이 심해 그동안 관련 부처가 알게 모르게 교통정리를 해왔다. 손보업계도 소비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격 규제가 많았다. 이런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과징금을 때리는 건 지나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공정위 독립성 높여야=과징금 부과 뒤 이어진 소송에서 공정위의 패소율(일부 승소 제외)은 2004년 12.8%에서 지난해엔 22.9%로 높아졌다. 전부 승소율도 지난해 83건 가운데 50건으로 60.2%에 그쳤다.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면 10건 중 4건은 전부 또는 일부 승소해 제재가 취소되거나 과징금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소비자 보호의 첨병이란 공정위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더라도 패소율이 높아지는 건 문제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그래서 공정위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가 지금처럼 국무총리 산하에 있으면 정부 입맛에 따라 기업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성대 경제학과 강신일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공정위원장 임명 과 정에서 국회의 동의나 추천을 받고 있다”며 “경제 규모가 커감에 따라 공정위의 힘도 세지는 만큼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인사·예산이 독립돼 있는 별도의 조직”이라며 “관련 업계는 물론 법조계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독립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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