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견제로 핵 재활용 못하는 한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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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3면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국제적 압력이 있어서 못한다는 것이지 우리의 경제력 정도면 핵 개발은 할 수 있지요?
● 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답변 드리기 곤란한 질의입니다.
●허태열=국제적 압박이 없으면 핵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어느 정도입니까?
● 박창규=1945년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때 3년 정도 걸린 것으로 압니다.
 
북한 핵실험(10월 19일) 소식이 전해진 뒤 열린 2006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의 화두는 한국의 핵 개발 능력이었다. 박창규 원장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암시할 만한 사건이 2004년에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원전 제어에 필요한 장치를 이용해 농축우라늄 0.2g을 추출한 사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자수’한 것이다. 국내외에 파문이 일었다. 다행히 IAEA 사찰 결과 자진 신고한 내용과 사실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돼 문제가 확대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한국도 우라늄을 농축할 능력이 있음을 간접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원자력은 발전과 핵무기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핵무기와 발전에 쓰이는 우라늄은 다르다. 2004년 0.2g의 우라늄 추출에 성공할 당시 우라늄235의 비율은 10% 정도였다. 핵무기가 되려면 90% 이상으로 농축된 우라늄235가 15㎏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다.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어도 말이다.
 
노태우 정부, 한반도 비핵화 선언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다섯 나라에 대해서만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다. 그러나 NPT는 원자력발전을 위한 핵주기 완성(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만은 인정한다. 일찌감치 ‘비핵 3원칙’을 선언한 일본이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을 짓고 있고,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미국과 맺은 원자력협정에 가로막혀 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을 하다가 생긴 핵연료(사용후 핵연료)의 변환, 핵물질의 이전, 재처리 기술·장비의 이전 등을 미국과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오근배 박사는 “공동 결정이란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지금 사용후 핵연료와 관련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의 핵 비확산 의지를 인정해 양자 간 조약인 원자력협정을 고치면 발전(發電)을 위한 평화적 재활용을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재처리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박 전 대통령 시해, 1992년 초 노태우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등으로 인해 중단됐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평화적인 목적으로도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 하는 길이 막혔다.

반면 일본은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95년 로카쇼무라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을 짓는 공사에 착수했다. 한때 한국도 이종훈 한전 사장이 나서 사용후 핵연료를 위탁해 재처리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96년 4월 이 사장은 당시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가까운 호건 앤드 하트슨사(社)에 100만 달러를 주고 미국의 동의를 구해달라는 내용의 계약을 했다.
 
정부, 34년 만에 원자력협정 개정 나서
그러나 97년 말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고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계획은 좌초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전사장에 임명된 장영식씨는 취임 직후 호건 앤드 하트슨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위탁재처리 불가’를 결정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올인했고, 한전은 사용후 핵연료를 위탁재처리 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거론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3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인도·중국·일본이 모두 마음대로 (원자력을) 이용하는데 우리는 꽉 잡혀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의 시효는 2014년까지다.

김 부총리는 “이미 원자력 정책협의팀을 만들어 올 연말까지 협상 초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34년 만에 원자력협정 개정이 추진되는 것이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협상 초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과학기술계의 소파(SOFA,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로 불리는 원자력협정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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