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학새마을회장이 후배공무원에 주는 글(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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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깨끗한 부」 부끄럼 아니다”/재산 모으되 정당한 노력으로/분수지키는 「게의 철학」 배워야
50년동안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김수학회장(66)이 후배공무원들에게 주는 글을 보내왔다. 김 회장은 국교졸업후 일제때 면서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후 내무공무원으로 요직을 두루 거쳐 도지사에까지 올랐으며 국세청장·토지개발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편집자주>
『새정부가 시행한 공직자 재산공개로 사회 전체가 진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관직에 몸담았고 아직도 공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괴심이 앞섭니다.
이번 일로 많은 국민들이 느꼈을 허탈감과 무력감·분노감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리사회에 새로운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해 한편으로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개혁의 기운,신한국의 기대감입니다.
새시대를 올바르게 일궈가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냉엄한 자기개혁과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산축적과정에 문제가 있는 장관·국회의원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지금의 진통은 당연히 거쳐야할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지탄 대상이 된 사례들을 접하고 공무원의 본분은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국세청장시절 경험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5공 정부가 들어서서 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80년이었습니다. 어느날 사정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도 무겁고 해서 불쑥 일선 세무서 한군데에 들렀습니다.
오후 5시쯤인데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여직원 한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청장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여직원에게 물으니 엉뚱하게도 직원들은 고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눈치채지 못하게 찾아간 구석방에서는 세무서장과 직원들이 숙연한 분위기로 제주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때아니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는 순간 지방처럼 벽위에 써붙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청백지심 행충정지도」(청렴한 마음을 갖고 충성과 올바름을 행한다).
사정바람을 의식해서인지 올바른 공무원상의 실천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직원들에게 「잘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한 약속은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이다.
항상 마음에 새겨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격려한 일이 있습니다.
공무원의 직책은 국민이 부여해준 것 아닙니까.
흔히 공직자를 얘기할때 안빈낙도니,청빈이니 합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같은 덕목은 쌀과 김치·된장이면 족했던 전통적 농경사회의 공직자나 선비들에게 해당됐던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산업사회로 바뀌었습니다. 또 현대는 신용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신용은 부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재산문제에 관해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청부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당한 노력으로 모든 재산이고,또 뜻있는 일에 쓰여질 수 있다면 오히려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직자라면 특히 명심해야 할 부의 철학이 있습니다. 게의 철학입니다. 게는 자기 몸에 맞게 구멍을 팝니다. 구멍을 작게 파면 들어갈 수 없고 너무 크게 파면 쉽게 잡아먹히고 말기 때문입니다. 자기분수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저는 물론 우리 공무원 대다수가 매우 건강하게 제 갈길을 잘 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너나없이 겪고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새시대의 요청인 건강한 사회 건설이라는 과제를 생각할때 다시한번 공무원의 길을 생각해보자는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사회 전체에서 우리 공무원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저는 공무원이란 조직체의 서무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무너지면 모두 무너집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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