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개혁태풍에 “방향타” 상실/진로에 고심하는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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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변혁주도권 빼앗겨 입지축소/벌써부터 단체장·총선 우려 목소리
김영삼정부의 거센 개혁 바람속에 민주당이 향후 진로 설정에 고심하고 있다.
과거 야당 몫이던 개혁과 변화의 주도권을 정부·여당에 빼앗긴채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의원들은 요즘 적잖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김영삼정부의 개혁추진이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 야당의 영토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따른 상황인식이다.
이기택대표는 25일의 확대간부회의에서 이같은 위기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면서 간부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김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전당대회를 잘 치러 기대를 걸었으나 우리당 지지도가 여당보다 훨씬 떨어져 깜짝 놀랐다. 자칫하면 민주당이 잊혀질지도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실제로 언론사 등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선때 30%를 웃돌았던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18%선으로 떨어져 41%선을 유지하고 있는 민자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천의원은 『당에서 단체장선거 조기실시를 요구하고 있으나 지금 상태라면 우리가 참패한다. 김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져 있다』며 『단체장선거에서의 패배는 총선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그는 『시장·군수를 다 빼앗기고 어떻게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김대중 전대표가 정계를 떠난 상황에서 이제는 호남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같은 위기상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김 대통령의 고속 개혁드라이브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통령은 불과 취임 1개월동안 청와대 앞길 공개,안가폐쇄,육군참모총장 및 기무사령관 경질,고위공직자와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공개 등 예전에 없던 엄청난 변화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민주당은 당권경쟁과 체제정비로 한달을 흘려 보내야 했다. 전당대회(3월11일)를 통해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출발선상에 나서자 상대선수는 떠나고 없는 격이었다.
신순범최고위원은 『김 대통령의 개혁 속도가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다』며 『2년간 일을 모두 끝내고 나머지 3년은 쉬려하는 것 같다』고 김 대통령의 빠른 개혁추진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허를 찌르는 김 대통령의 개혁내용과 방향이다. 즉 어느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들을 치고 나가기 때문에 야당도 반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박지원 대변인은 『정주영 전국민당대표의 정계은퇴나 박태준씨의 포철퇴진,군수뇌부의 경질,재산공개로 인한 박준규국회의장의 사퇴 등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명분이 있다』며 『따라서 야당으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고 토로한다.
반면 이해찬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현재 위기 상황의 더 큰 요인이 내부에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를 통해 거대 여당에 대응할만한 새로운 지도체제를 정립했어야 했다』며 『결과적으로 개혁 성향도 약해지고 지역균형마저 깨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평가는 정책개발 능력과 도덕성에 의해 좌우된다』며 『정책개발 능력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는 야당으로서 아직 도덕성조차 부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당장 이렇다할 돌파구가 없다는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이부영최고위원은 『정부·여당의 재산 공개는 정부 수립이후 최초의 일로 개혁 노선의 반영』이라며 『여당을 견제·비판할 수 있는 강한 야당이 되는 길은 높은 도덕성과 꺼릴것 없는 진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1차로 소속 의원들의 재산을 있는 그대로 공개,민자당과의 차별화를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담도 없지 않다. 의원들이 얼마만큼 성실하게 신고해줄지 의문인데다 벌써부터 몇몇 의원들은 여당의원 못지 않은 재력가로서 재산형성에 컴컴한 구석이 없지않아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덕규사무총장은 『정부·여당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야당은 이를 감시하고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신정부 개혁의 대차대조표가 나올 것이다. 그때 가면 야당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김영삼정부의 과수나 「기대」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일 만큼 제1야당은 길을 헤매고 있다고 해야겠다.<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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