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예금서 펀드로 …'투자 정석'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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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1997년 7월 18일 미래에셋투자자문이 설립됐다. 이듬해 12월 미래에셋은 자산운용업 허가를 받고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인 ‘박현주펀드 1호’를 출시한다. 펀드는 3시간 만에 500억원 판매를 마감했다. 1년 새 100%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은 자본시장을 이끌어 갈 인물로 회자됐다.

 그러나 ‘미다스의 손’ 박 회장도 2000년 기술주(IT) 버블 붕괴는 피해 가지 못했다. 폐쇄형인 탓에 박현주펀드의 손실은 더 컸다. 지금이야 아무 때나 가입과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가 대부분이지만, 당시엔 특정 기간에만 돈을 받아 운용 기간이 끝나면 일시에 돈을 돌려 주는 폐쇄형 펀드가 일반적이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데도 펀드 청산일에 맞춰 돈을 내줘야 하는 탓에 투자자들은 쓴맛을 봐야 했다.

미래에셋은 이후 개방형 펀드로 방향을 틀었다. 2001년 2월 국내 최초의 개방형 뮤추얼 펀드인 ‘미래에셋인디펜던스’를 출시했다.

 펀드 수탁액이 사상 최고치에 달했던 때는 99년 7월 22일(262조5600억원). 너도나도 적금통장을 헐어 펀드에 가입했다. 결과는 주가 폭락으로 인한 공멸. 그러던 시장이 8년 만에 복원되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이다. 채권형 펀드에서 주식형 펀드 위주로 크게 바뀌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미래에셋이 있다. 2000년 말 미래에셋의 주식형 펀드 규모는 522억원이었다. 그러나 2004년 ‘3억만들기 적립식펀드’를 내놓으며 시장 판도를 바꿨다. 주식형 펀드 시장 점유율은 2000년 말 1.28%에서 지난해 말에는 32.72%까지 늘었다. 올 5월에는 전체 펀드 수탁액에서도 1위로 올라섰다.

 ◆미래에셋의 ‘빛과 그늘’=견제도 만만치 않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미래에셋이 사들인 종목에 대해서는 매도나 보유 의견을 내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막대한 주문 물량을 미래에셋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강세 장에 강하지만 약세 장에 는 약하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증시가 횡보할 때 미래에셋은 수익률 부진에 허덕였다. 3월에는 수익률 조작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2000년 초 설정한 벤처펀드를 2005년 청산하면서 당시 이 펀드가 투자한 회사 한 곳이 부도나자 이 회사의 주식을 사무수탁회사에 넘기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높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펀드 자본주의에 대한 우려도 팽배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2개에 달한다. 미래에셋이 기업에 권력을 행사한다면 기업 고유의 활동이 침해될 수 있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펀드가 권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박 회장은 또 “앞으로 20%에 불과한 해외 운용사업 비중을 절반으로 끌어올리겠다”며 “올해 안에 선진국 투자자들을 겨냥한 글로벌 헤지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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