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통령(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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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TV화면에 김 대통령이 외부 인사들과 만나 떡국이나 국수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종전보다 음식 가짓수가 크게 줄어들고 국수 한그릇으로 한끼를 때운다는 서민다운 모습이 한결 돋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이나 외부 인사들과 만나 식사하는 장면을 TV로 자주 보여준다면 이야말로 정말 식상할 일이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TV연속극에서도 밥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면 집어치우라는 여론이 높아진다. 청와대의 달라진 식사 풍경을 보여주는건 한 두번으로 족한 일이다. 이젠 진짜 문민대통령에 맞는 뭔가 새로운 모습을 부각시켜야 한다. 식사하는 대통령 모습이 아니라 책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꼭 책을 읽는 모습이 아니면 어떤가. 책읽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출이 필요한 것이다. 고급가구로 장식된 사치스런 집무실·회의실이 아니라 서가에 책이 가득한 방에서 회의를 하고 모임을 갖도록 권하고 싶다.
한때 청와대에 도서실이 없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6공후기에 녹서제라는 도서실을 새로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얼마만한 장서가 비치되었는지,누가 얼마나 이용하는지 뒷소식을 알지 못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도서실이 없다는 것은 오랜 군인정치가 낳은 반문화적 풍토다. 이제 문민시대에 새 대통령이라면 책과 벗하는 문화적 모습의 대통령 이미지를 심어주는게 바람직하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의 통치자인들 책을 멀리해서는 올바른 통치를 하지 못했다. 책을 멀리하고 탄압한 통치자는 폭군이었고,성군이고 현군이라면 책을 숭상하고 문사를 존중할줄 알았다. 미 부시대통령이 백악관들에 들어가자 마자 정원에 실내골프장을 만들었고 낸시여사는 값비싼 도자기로 주방을 장식했다고 미국인들도 입을 비쭉거렸다. 이에 비해 클린턴­힐러리부부는 백악관의 책장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고 이것부터 고쳤다해서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올해가 바로 「책의 해」다. 책의 해라고 온갖 캠페인을 벌이기보다 대통령이 책에 들러싸여있는 모습을 자주 TV화면에 비춰주면 효과가 클 것이다. 대통령이 서재에서 참모들과 회의하는 모습이 얼마나 문화적이고 문민적인가.
밥먹는 대통령이 아니라 책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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