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울리지 않는' 판례…피해아동 부모 부담덜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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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보호 논리와 엄격한 심리주의가 맞서온 아동 성폭력 재판에서 아동 인권 논리가 이겼다.

법원이 법정에서 직접 증언하지 않은 아동의 비디오 진술을 증거로 인정한 것은 직접 심리주의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비디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존 입장을 바꾼 판례다.

아이가 법정 출두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받을까봐 고소.고발을 꺼려오던 피해아동 부모 등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지난해 서울지법 서부지원의 L양(11)사건의 경우 L양의 어머니(45)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까지 벌여 5년 전에 딸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洪모(58)씨를 그해 1월 법정에 세웠다.

법원은 L양의 법정 증언을 고수했고, 어머니 측은 딸의 진술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증거로 인정해 달라며 딸을 법정에 보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洪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도 성폭력 피해아동의 비디오 진술 테이프가 두 차례 증거로 제출됐지만 판사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녹화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칫 무고한 죄인을 낳을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

전 청소년보호위원장 강지원 변호사는 "피해아동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고려해 비디오 진술 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성폭력보호법 개정으로 올 3월 12일부터 13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의 비디오 진술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비디오 증언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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