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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칼럼] '國格'의 조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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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27면

정재호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흔히 사람됨의 이모저모를 가리켜 ‘인격(人格)’이라 부르고 사물 생김새의 급을 일컬어 ‘품격(品格)’이라 지칭한다. 같은 논리로 한 나라의 능력과 행실에 따라 암묵적으로 부여되는 평가를 ‘국격’이라 부를 수 있겠는데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바로 이에 달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국격을 높이는 핵심 조건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마치 조직폭력배나 졸부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한 세기에 두 번씩이나 강대국화를 이뤘던 일본이 동아시아로부터 받고 있는 평가와 인식을 보거나, 마치 떼를 쓰듯 핵무기를 추구하는 북한을 보더라도 국격에는 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내포돼 있음에 틀림없다.

과거의 국제관계가 상당 부분 힘에 근거한 막후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그야말로 정보통신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공개되거나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외교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훌쩍 넘어선 이미지(image)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한 과학자의 학문적 부정직이 그 나라 학계 전체에 대한 신인도의 하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 또 중국과 미국의 3대 및 7대 교역국으로서 한국이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이에 적합한 인식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이 든다면 이제는 이 국격의 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제국의 경영’과 같은 강대국의 자질을 논하자는 말이 아니다. 1972년 수교 당시 그토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본으로부터 일절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지금까지도 도덕적 우위를 누리고 있는 중국처럼 우리가 하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국격에 관한 한 무시할 수 없는 스위스·싱가포르와 스웨덴 등의 경험을 배울 방도는 없는 것일까?

초등학생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폭언과 야유를 일삼는 국회의원들, 공권력의 존재를 무색하게 하는 불법 폭력 시위의 난무와 이에 대한 외국 방송들의 집중방송, 균형보다는 집착에 가까운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 우리가 주변 국가들과 국제사회에 실시간으로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에 대해 무관심에 가깝도록 무지한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2004년 새로운 국회가 시작되던 그때의 희망과 기대를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는가? 과연 몇 년 만에 한 번씩 발휘되는 이벤트성 충격파로 우리의 국격이 진정한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궁극적인 해답은 중장기적 교육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교실은 황폐화되고 사교육에 모든 것이 집중되고, 능력도 예절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한국의 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의 계절을 맞아 무수한 공약과 선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과연 그것들이 그렇게도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쉬 떨칠 수가 없다. 앞으로 한국을 지탱해 나가야 할 경쟁력의 원천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속 시원한 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의 미래를 맘 놓고 맡겨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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