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요양신청」기각에 행소 3년|첫「중금속 직업병」판결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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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직업병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5년간의 길고 힘겨운 투쟁끝에 법원으로부터 첫 중금속 직업병 판결을 이끌어낸 경남 울산시 여전동 송원산업 퇴직근로자 심문보씨(33. 부산시 양정2동 167).

<88년 권고사직 당해>
심씨는『일반 서민들에게 문턱 높은 곳으로 알려진 법원에서 직업병 판정에 큰 획을 긋는 판결을 내려 앞으로 많은 중금속 중독 근로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데 대해 무척 감사하게 여긴다』고 했다.
타고난 건강한 몸 자체가 유일한 재산이었던 심씨가 납·카드뮴중독과 악연을 맺게 된 것은 86년10월. 부산에서 1t트럭을 끌고 다니며 화장지등을 팔아오다가 송원산업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채 단지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끌려 이곳에 입사하면서였다.
심씨가 이 회사 생산부 분체 2방에서 한 일은 납·카드뮴의 분말을 스테아린산과 혼합해 PVC안정제(절연물질)를 제조한 뒤 25kg짜리 마대에 하루 1백50자루씩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사 2년도 채 안된 88년 7월 쓰러져 권고사직 당하고 말았다. 납·카드뮴 분말이 체내에 서서히 축적돼 심씨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입사전 58kg이던 몸무게가 47kg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심씨가 퇴사하기 직전 회사지정병원에서 받은 건강진단결과는 십이지장궤양에 불과했다.
심씨 자신도 당시는 중금속 중독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2∼3개월 쉬면 나을 것이란 기대에 전세 4백만원 짜리 판잣집 단칸방을 얻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증세가 나아지기는 커녕 어지러움·두통·식욕부진등이 심해지고 의식을 잃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갔다.
그러던 중 88년 9월초 노동부에서 직업병 일제신고를 받는다는 보도를 듣고 자신이 중금속 중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정기준 못 미친다.>
이때부터 90년 6월까지 노동부·병원등을 무수히 찾아다니며 통증을 호소했으나 결과는 허사였다. 직업병 판정심의 위원회에서는 『병원 검사치가 노동부 직업병 판정기준에 미달된다』며 요양 신청을 기각해 버렸다.
심씨는 근로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노동부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중금속 중독을 들고 법원 문을 두드렸다. 노동부가 기각해버린 요양불승인 처분에 대해 이를 취소해 직업병으로 인정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90년 7월 부산고법에 냈다.
그러나 심씨가 직업병인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15차례의 지루한 재판과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 했다.
드디어 지난 2월 일 담당재판부가『심씨의 임상증상·그가 일했던 공장의 작업환경을 종합해 볼 때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선언, 심씨의 외롭고 긴 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치료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장기 연구소에 기증>
심씨는『자신이 죽으면 장기를 모두 연구소에 기증해 직업병 연구 자료로 쓰게 할 것』이라며 『건강한 근로자가 있어야 회사도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회사·노동부등의 인식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부산=정용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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