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면담요청 “필요없다”네차례 거절/김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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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민정부의 군 전격인사 숨가쁜 순간/“앞으론 직보말고 장관에 얘기하라”호통/「하나회」완전 배제… 군 “올겄이 왔다”실감
김진영육참총장과 서완수국군기무사령관의 전격 경질은 김영삼정부 「군부 길들이기」작전의 서막으로 풀이된다.
8일 오전 갑작스런 발표가 있자 국방부를 비롯한 군 내부는 충격과 경악을 금치못했고 장관실 실무자들은 극도의 보안속에 발표문을 작성,기습적으로(?) 발표했다.
○“군인은 사표 안내나”
권영해국방장관은 김 총장 등의 경질소식을 이날 오전 8시 청와대 단독조찬 회동에서 처음 접했다.
김 대통령은 『대통령이 새로되면 군인들은 사표를 안내느냐』면서 총장과 기무사령관 보직해임건을 꺼냈고 갑작스런 인사안에 막 식사하려던 권 장관은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는 것. 권 장관은 조찬에서 돌아오자 바로 인사안을 만들어 다시 청와대로 올라가 절차를 밟았다.
이 시각 김진영육참총장은 계룡대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있는 국기게양식에 참석,『신한국 건설에 군도 적극 동참,의식과 발상의 일대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권 장관으로부터 자신의 보직해임 통보를 받은 것은 이날 오전 11시20분쯤으로 이때 박재욱국방부대변인은 이미 기자실에 내려와 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단 4시간에 걸친 전격인사였다.
그러나 문민정부 등장후 새정부와 군의 관계를 짚어 보면 정부의 이번 육참총장 및 기무사령관 보직해임이 전혀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민정부 출범으로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김 대통령의 육사졸업식 연설은 신정부의 군부통제 스타일을 강력히 시사했었다.
○힘겨루기 “충격요법”
김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고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정부가 2년 임기의 8개월여를 남겨놓은 현역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 보직해임이라는 충격요법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기존 군수뇌부가 새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등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것 같다.
국군기무사로 대표되는 군부기득권 세력은 김 대통령이 청와대 및 정부조각에서 보인 인사원칙에 대해 내심 강한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경호실장 임명에서 군 출신이 배제된 것을 필두로 각 부처 장·차관 자리에서도 군 출신 배제원칙은 뚜렷이 나타났다.
거기에다 기무사의 위상·역할문제와 관련,서완수사령관이 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것을 신청했다가 무려 네차례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상도동 극비방문 포착
또 김 대통령이 정식취임전 권영해차관을 상도동 자택에서 극비에 만난 사실을 포착한 기무사령부측은 그동안 주도세력에서 소외돼온 권씨가 장관에 기용될 경우 군내 동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권 차관에 관한 비리를 수집,김 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던 것.
지난 3일 국방부 현황보고때 서완수사령관이 참석한 것을 보고 『앞으로는 대통령에게 직보하지 말고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라』고 면전에서 일갈,권 장관 이하 참석한 군수뇌부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로써 그동안 나돌았던 기무사의 역할축소 문제는 ▲사령관의 계급 하향조정 ▲사령관의 대통령 직보체제 폐지 ▲일반정보수집기능 폐지 등으로 가닥이 잡힌 셈. 부산 동향에 친YS로 알려진 김진영총장의 전격해임은 군내에서 여전히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하나회」인맥의 완전제거로 풀이되며,또한 「정치장교」의 배제라는 원칙이 작용한 것이다.
○“비리 흘린 것 아니냐”
군수뇌부의 전격 해임발표가 있자 일부에서는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 신임장관들에 대한 비리사실을 군부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즉 김영삼정부의 대군정책에 불만을 품은 기득권 세력이 신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임내각에 대한 범국민적 불신감을 조성하려 한데에 군부의 기존세력도 개입한게 아니냐는 풀이다.
어쨌든 32년만에 등장한 문민 YS정부가 오랫동안 군사우위 통치체제 하에서 길들여져온 군을 순치시켜나가기 위한 1단계 조처가 끝난데 불과하다. 김영삼정부가 앞으로 넘어야할 대군부 난제들은 가볍지 않다. 이번 전격경질로 신정부의 대군부 통괄 가이드라인은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됐지만 보다 가시적인 원칙은 오는 6월에 있을 정기인사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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