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박사’ 탄생,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이홍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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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홍열씨가 올바른 걷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상선 기자]


“걷기는 자신의 몸에 적합한 속도와 보폭으로 시작해 천천히 강도를 높여가야 합니다. ‘파워워킹’이 좋다며 무작정 아령을 들고 팔을 휘저으며 걷는 사람이 많은데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어요. 위험한 일입니다.”
 
왕년의 국가대표 마라토너 이홍열(47·사진)씨가 걷기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 씨는 1984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4분59초의 한국 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마의 15분’ 벽을 깼던 인물. 그랬던 그가 마라톤이 아닌 걷기를 연구해 다음달 경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마라토너 출신 첫 체육학 박사다.

박사 논문 제목은 ‘RPE(Ratings of Perceived Exertion)13에 의한 12분간 보행테스트의 타당성’. RPE13은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 강도로 주먹구구식 운동이 아닌 각 개인별 체력에 맞는 운동 강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논문에 담았다.

하루 1시간씩 일산 호수공원에서 걷기와 달리기를 하던 이 씨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자세로 걷는 것을 보고 이 분야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단다. 이씨는 “초보자들은 아령을 들고 걸어서는 절대 안되고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하루 30분에서부터 차츰차츰 시간을 늘려가며 걷는 게 바람직하다”고 걷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 씨는 ‘워크홀릭’들이 초보 단계인 아주 천천히 걷기에서부터 경보 단계까지 도달 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담은 또 하나의 논문을 집필중이다. 각종 강연을 통해 올바른 걷기법을 지속적으로 보급하고도 있다.

“걷기 운동을 한다면 경보까지 할 수 있게끔 실력을 키우는 게 좋습니다. 경보는 열발가락 끝부터 종아리, 골반, 허리, 어깨, 목까지 모든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는 최상급의 운동이니까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법의 보급을 강조하는 이 씨는 요즘 인기를 끄는 마사이 워킹 신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보조기구 없이 스스로 올바른 걷기 방법을 터득할 때 운동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경희대에서 ‘조깅과 워킹’이란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과 함께 걷고 뛰는 특이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론으로만 가르치면 박식해 보일 지는 몰라도 배우는 사람에겐 효과가 크지 않아요. 내가 직접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거기서 최고의 강의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86년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같은 해 선수생활을 끝내고 경찰대 무궁화 체육단 마라톤 감독, MBC 마라톤 해설 위원 등을 거쳤다. 마라톤 동호회에 초청 특강을 다니던 2000년 무렵 체육학을 더 공부하기로 했다. 2004년 경희대에서 스포츠외교학 석사를 받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까지 받게 됐다. 올 가을학기부턴 경희대 체육대학원에서 러닝CEO과정 주임교수를 맡는다.

최선욱 기자<isotop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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