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내가 연다] 1. 미술 한기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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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4년 문화계가 다소 침체했던 지난해를 딛고 일어나 바쁘고 활기찬 새 날을 펼치고 있습니다. 광주.부산비엔날레와 국제박물관협회 총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 세종문화회관.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등 보수.신축한 새 공간 입주와 개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설로 관에서 민으로 넘어오는 문화행정 등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올해 문화의 각 분야를 이끌 기대주들을 만났습니다.

화가 한기창(38)씨는 해를 넘어설 때마다 작고 짧은 계획을 세운다. 큼직하고 긴 미래를 내다보기에는 그가 겪은 지난 10년 세월이 가팔랐다. 오로지 그림 생각에 조바심치던 1992년, 그를 거꾸러뜨린 교통사고는 1년이 넘는 병원 생활과 7차례에 걸친 대수술 흔적을 그의 몸에 남겼다. 목발을 짚고 작업실에 다시 들어섰을 때, 그는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사에 목이 메었다.

"이런저런 욕심이 기름기 빠지듯 좍 정리되면서 이 몸 하나 작품에 던지지 못하랴 싶었습니다. 호흡은 가빠도 마음은 느슨하게 가자 생각하니 만사가 즐겁고 기쁘더군요."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아트 스펙트럼 2003'전에 내건 '뢴트겐의 정원' 연작은 중환자실에서 살아 나온 그의 체험이 밴 작품이다. 한 폭 사군자나 화조화처럼 아름답던 그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존을 위한 낮은 신음을 뱉어낸다. 형광 불빛 아래 빛나는 것은 묵에서 번져가는 붓자국이 아니라 바스라진 뼈마디, 쇠심 박힌 척추, 피맺힌 갈비뼈를 찍은 X선 필름이다. 작가는 살기 위해 수없이 찍어야 했던 X선 필름을 작품 재료로 삼아 삶의 살점이 뚝뚝 묻어나는 그림을 그렸다.

"X선 필름에 나타나는 명암과 단계적 변화가 먹의 농담과 비슷했어요. 동양화는 꼭 지필묵을 써야 하나 고민하던 차라 돌파구가 된 셈이지요. 상처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X선 사진 속에서 치유와 생명력을 품은 꽃을 피우려 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을 통과한 이야기가 저절로 흘러나왔죠."

그는 "재료나 기법을 벗어나서 한국적 미학, 한민족의 느낌을 주는 그림이 동양화이고 한국화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캔버스에 유채를 썼지만 한국미가 넘친 박수근은 그의 잣대로 보면 서양화가가 아니라 첫손에 꼽을 수 있는 동양화가다. 한국 미술계에서 오랜 논란 속에 비틀대고 있는 동양화 또는 한국화에 대한 정의를 그는 명쾌하게 풀었다.

한기창씨는 지난 1년을 문화관광부가 내준 서울 창동 미술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지냈다. 다른 작가들과 교유하며 작업실 월세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모처럼의 한 해였다. '어떻게 하면 제 그림 그리며 먹고 살 수 있을까요'라는 후배들의 질문이 아직도 가슴 아프지만, 이런저런 입주 스튜디오가 늘어나고 대안공간이 생기는 걸 보면 힘이 솟는다.

"서울대니 홍익대니 하는 학맥은 많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대학 구조 안에서 '단체 의식'을 뛰어넘지 못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아 아쉬워요. 관습화된 화풍이나 체념을 넘어서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려는 정직한 눈과 용기를 지닌 작가들이 새해에는 많아지리라 믿습니다. 결국 작품의 질이 문제겠지요. 비주류 작가들이 더 뛰는 한 해, 다양성이 부글거리는 2004년 화단을 보고 싶습니다."

한씨는 의정부 양주 가는 길에 외양간으로 쓰던 공간을 작업실로 삼은 올해, 일복이 터졌다며 즐거워했다. 7일부터 서울 삼청동 가모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동유럽 순회전 작가로 뽑혔다. 그는 "당장 작품을 사고 파는 일에 매이는 건 싫지만, 불황의 늪에 빠졌던 미술시장과 화랑가가 살아나 누추하던 작가들의 밥벌이도 활짝 피는 한 해를 기대한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기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소통과 교류에 목말라 하며, 공부하고 그리고 생각하고 또 그리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그는 뭐니뭐니 해도 제 좋은 작품을 하며 사는 작가가 최고라며 "작가 만세!"를 외쳤다.

정재숙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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