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장르별 대표작 다시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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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김지미.윤정희씨 같은 왕년의 스타와 전성기 시절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당시엔 '가케모치'뛰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지"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가케모치'란 충무로에서 통용되던 일본말. 한번에 여러 편의 영화에 동시에 출연하는 것을 가리킨다.

서너 편을 같이 진행하는 게 예사라 한곳에서 촬영이 끝나면 의상만 갈아입고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하느라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등 파김치가 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대사가 더빙(후시 녹음)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대본을 꼼꼼히 외울 필요가 없어 '가케모치'가 가능했다.

게다가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아 세트를 한번 지으면 조금만 손질해 여러 편의 영화에 써먹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배경과 설정이 엇비슷한 영화가 양산됐고, 그 중에서도 멜로물과 액션물이 봇물을 이뤄 '장르'를 형성했다.

올해 창립 30년을 맞는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연중 기획 행사에서 이 같은 한국영화의 과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장르별 대표작을 소개하는 이번 기획전은 우선 1월엔 한국영화의 태동기를 들여다본다. 최인규 감독의 '독립전야'(48년),'사랑의 맹서'(45년),'자유만세'(46년) 와 윤용규 감독의 '마음의 고향'(49년)이 상영된다.

2월의 '한국 액션 영화 시리즈Ⅰ:의리의 사나이'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암살자'(69년)와 '원점'(67년), 고영남의 '명동의 12 사나이'(71년), 임권택의 '애꾸눈 박' 등이, 7월의 '한국 액션 영화 시리즈Ⅱ:만주의 무법자'는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인 '두만강아 잘 있거라'(62년)를 비롯해 '무숙자'(신상옥.68년), '불붙는 대륙'(이용옥.65년), '쇠사슬을 끊어라'(71년.이만희) 등 만주가 배경인 액션 활극을 준비했다. 박노식.장동휘.허장강.황해 등의 묵직한 액션에서 한국영화의 생명력을 읽을 수 있다.

3월의 '매혹과 혼돈의 시대:1950년대 멜로영화전'엔 '청춘쌍곡선'(한형모.56년),'그 여자의 일생'(김한일.57년),'지옥화'(신상옥.58년) 등이, 4월과 5월의 '스위트 스위트 홈'에서는 '삼등과장'(이봉래.61년),'공처가 삼대'(유현목.67년), '자유부인'(한형모.56년) 등이 상영된다. 장소 영상자료원 시사실. (www.koreafilm.or.kr)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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