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들어가는 「재야」/사문수석 내정된 김정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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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6·3사태 반공법위반으로 구속/채소장사 등 하며 줄곧 운동권에/“소외된 사람 눈물 닦아주고파”
변변한 직업도 없이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만 몸담아온 재야인사 김정남씨(51)가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돼 세상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24일 김영삼차기대통령의 사회문화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된 김씨는 『그동안 익명의 세월을 살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재야에서도 배후활동을 주로 해온 재야의 숨은 거물중 한명이다.
김씨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니던 시절 6·3사태의 주동인물로 몰려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래 일관되게 운동권의 외길을 걸어왔다.
현승일(현 국민대 총장)·김중태·김도현(민자당 성동을지구당위원장)씨 등과 함께 6·3세대의 상징적 인물중 한사람이다.
그후 다른 친구들은 학계·언론계·정계로 제길을 찾아갔지만 김씨만은 당시 선고유예로 풀려난 반공법 위반의 빨간 딱지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지금까지 낭인생활을 해왔다.
대학시절부터 진보적 이론의 대가로 꼽혀온 그는 후배들과 자주 어울리며 10∼20년 아래 운동권과도 맥을 통하고 있다. 그 때문에 68년 서울사대 독서회 사건을 비롯,각종 시국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3년간 수배생활을 하게 됐다.
경찰에 쫓기던중 대학 1년 선배인 신홍범씨(두레출판사 사장) 집에서 숨어지내다 신씨의 누이동생과 사귀어 수배기간중에 결혼했다. 결혼후 호구지책이 막연했던 그는 한동안 서울 녹번동에서 손수레로 채소장사를 하기도 했다. 출판사 근무 등으로 전전하다 그가 본격 재야활동을 시작한 것은 74년 민청학련사건 이후다. 당시 수배중이던 김지하씨를 도피시키면서 재야인사들과 접촉이 잦아졌다.
이후 그는 이부영(현 민주당의원)·장기표·조영래(작고)씨 등이 경찰에 쫓길때 숨겨주고 구속되면 변호사 알선과가 뒷수발을 도맡아 했다.
김씨는 긴 재야생활을 청산하면서 24일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과 같이 1문1답을 가졌다.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소감은.
『재야에 몸담다가 제도권의 국정운영에 참여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뿌리뽑히고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주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제도권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이제 재야민주세력도 비판만 하기보다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국정에 참여해야 할 때다. 김 차기대통령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임명한 것 같다.』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적 복안은.
『그들과 직접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 청와대의 「귀」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겠다. 아직 정확한 지침을 시달받지는 못했지만 차차 업무를 파악해가며 구체적 대안들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재야에선 김대중 지지가 많은데 김영삼 지지를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말해 그의 인간성에 매료됐다. 그를 믿고 싶다. 이제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뤄졌다고 보기때문에 누구를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다.』
­넥타이를 몇번이나 맸나.
『집안 대·소사나 큰일있을때 3∼4번 정도 밖에 안맸다.』
­김 차기대통령과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74년 유신시절 YS가 신민당의 선명투쟁을 지도할때 만났다. 그 이후 재야와의 연결 역할을 맡았다.』
취미는 등산,부인 신춘자씨(49)와 딸 넷.<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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