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잘못 뽑은 우리 탓" 주민들 자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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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또 보궐 선거를 한다면 이제는 정말 제대로 뽑아야죠."

중앙일보의 '민선 군수들의 배신… 3명 모두 구속' 보도(7월 7일자 5면.사진)에 대해 전북 임실군의 주민들은 "군수를 잘못 뽑은 우리 탓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주민 한운수(37.농업)씨는 "지방자치의 성패는 결국 주민들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며 "찍어서는 안 될 사람을 군수로 뽑은 유권자들 먼저 스스로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실농민회 김형량 회장은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12년 동안 전북 지역에서 일 년에 한 명꼴로 옷을 벗을 정도로 단체장들의 부패가 심각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상전이 없다 보니 군수들이 제멋대로 군정.인사를 주무르고 결국엔 사고가 터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럴 바엔 오히려 관선 때가 낫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군수 선거에 출마하면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생각으로 많은 돈을 쓴 뒤 당선되고 나면 본전을 뽑으려고 생각하니 공사 뒷거래나 인사 비리가 터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공무원 사이에선 이번 일을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과 새 출발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는 "주민을 위한 행정 서비스는 조금도 차질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자"며 직원들이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퇴근을 늦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무원들은 "우리 치부를 보여 준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따끔하고 올바른 지적을 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믿고 군정을 맡긴 군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은 "신문에 구속된 군수들의 사진까지 붙인 기사가 크게 실리니 공직자로서 긴장이 되고 경각심도 생긴다. 앞으로 청렴하게 생활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실군에는 주민들이 뽑은 군수마다 모두 구속된 것을 계기로 "내 발등 찍는 어리석은 짓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선거에서는 종친회.동창회에 기대는 후보보다 도덕성.정책을 꼼꼼히 따지고 살펴 옥석을 가려 내자"는 인식이 조용히 확산하고 있다.

장대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