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문화재 청장 “문화 외교·해외원조 중요성 실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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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이 5일 경복궁 경내에서 제주도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의의를 화제로 꺼내며, 문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사진=김경빈 기자]


유홍준(58) 문화재청장의 얼굴에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5일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서 만난 유 청장은 유네스코에서 만든 2007년판 세계자연유산 지도부터 펼쳐 들었다. 손으로 제주도를 짚으며 “내년부터 여기에 표시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 뉴질랜드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한국 대표로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했던 그는 인터뷰에서 문화 외교와 해외 원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 달이면 취임 3년을 맞는 유 청장은 경회루·서울성곽 북악산 방면 등의 문화재를 일반에 개방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의미를 꼽아달라.
 
“삼천리 금수강산 문화민족이라 얘기해 온 우리 국민들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게 됐다. 그 동안 7개의 세계문화유산이 등재돼 문화민족의 면모는 갖췄지만,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은 게 없어 아쉬웠다. 제주도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올 거라는 기대도 높아졌다.”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면.
 
“(그는 이 대목에서 제스처가 커졌다) 기존에 알려진 것 외에 새로 내세울만한 비경이 있으면 등재에 유리하다. 그런데 마침 2005년 여름 성산 일출봉 부근에서 공사를 하던 중 전신주가 땅속으로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내려가보니 지하 6m에 길이 2㎞의 동굴이 있는게 확인됐다. 그게 용천동굴이다.”
 
-심사평이 궁금하다.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에 들어가 본 조사위원들이 ‘인간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될 곳에 들어온 것 같다. 심사한다는 명목으로도 드나들어서는 안 되고 그대로 보존해 후손들에게 지구의 생성과 변화과정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용천동굴은 앞으로도 일반공개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유네스코쪽에서도 반대할 것이다. 독일서 쾰른대성당 건너편에 고층빌딩을 짓는 순간 유네스코에서 성당을 ‘위기의 문화유산’ 목록에 포함시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의결 과정에 참여한 소감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울롱 지역, 일본은 시마네현의 은광(銀鑛)이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의 사전심사에서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보편적 가치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두 나라는 외교력으로 밀어붙여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심사를 뒤집은 이례적인 경우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걸로 판단된다. 전문가 집단의 심사를 총회에서 뒤집으면 앞으로 세계유산이 제대로 권위를 갖출 수 있겠는가.”
 
-우리쪽 인력이나 운용 면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측 수석대표는 문화재청장보다는 유네스코 대사가 가는 게 맞다고 본다. IMF 때 없앤 유네스코 대사직을 부활시켜 전문가가 장기적 안목으로 이 일을 해야 한다. 유네스코에 대한 인적·물적 관계를 소상히 알고 있어야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문화재청장으로 일해보니 어떤가.
 
“청장이 되어서 하는 일 중 유일하게 낯선 게 외교 관련 업무였다. 세계유산 등재가 문화재청 소관인 줄도 예전엔 몰랐다. 책임자가 되고 나서 외교 업무는 외교부의 일이 아니라 각 기관에서도 중시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새로이 알았다.”
 
-문화재청에서 다루는 외교문제라 함은.
 
“관련 국제 대회 프로그램을 짜거나, 유네스코에 특정 문화진흥 프로그램을 기부하는 것 등이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우리의 국제적 문화기여도는 몇 위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8개국(G8)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핸드폰을 만드는 것으로 11위까지 올라갔듯 문화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원조도 포함한 의미인가.
 
“국내에도 굶는 사람이 많은데 뭣하러 남의 나라까지 돕느냐는 발상을 고쳐야 선진국 된다.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금과 록펠러 재단,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등으로부터 우리가 그간 받은 원조를 돌아보자. 일본이 부국인데도 한때 ‘경제동물’이라고 불리며 멸시받았다. 그에 대한 반성이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으로 나타났다.”
 
-다음달이면 청장 취임 3년이 되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2년 정도 할 걸로 예상하고 부지런을 떨었다. 컨센서스를 형성하기도 전에 추진한 일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교수 시절 답사 다니면서 ‘문화재청은 뭐하는 기관인데 이 따위로 관리해놨냐’는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청장으로 와보니 그렇게 투덜거리고 비판했던 사안들이 내가 집행해야 할 일이었다.”
 
-스스로 꼽는 업적이라면.
 
“문화재의 개방이다. 처음으로 경복궁내의 경회루를 개방했다. 목조건축은 사람이 드나들며 겨울엔 불 때고 여름엔 문 열어줘야 온도·습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 북악산 방면 서울성곽 개방도 보람있었다. 국민들은 그 동안 촬영금지·출입금지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 컨셉트를 바꾸는 게 어마어마한 일이더라. 출입을 금지해 두면 그 안에서 관리를 소홀히 해도 드러나지 않는다. 개방해서 손상이 생기면 매서운 비판을 받는다. 그래도 감행했다.”
 
-고궁·왕릉에서의 오찬이 비판받기도 하는데.
 
“(이 대목에서 그는 단호했다) 화기 사용은 조심하겠지만 고궁 활용은 비판 받더라도 계속하겠다. 세계철강대회·세계암학회 등 주요 국제대회는 지난 수십년간 프랑스의 베르사유·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같은 왕궁에서 열렸다. 왕조의 전통이 없는 나라들은 박물관 로비에서 만찬을 연다. 국제대회에 온 손님들에게 최대한의 예우는 고궁에서의 만찬이다. 5월 종묘제례 때는 100여 명이 창덕궁 가정당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먹고 종묘까지 걸어가 제례를 했다. 이때 참석했던 외국 귀빈들로부터 ‘한국의 이미지를 영원히 못 잊는다다’는 감사인사를 많이 받았다.”
 
-퇴임 후 계획은.
 
“저술과 연구다. 명지대에 미술사학과를 만들어놓고 교수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다.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마저 쓰고, 일반인들이 읽을만한 ‘한국미술사’도 저술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일하면서 당한 어처구니 없는 일, 기쁜 일들을 모아 ‘나의 공무원 답사기’를 쓸 것인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웃음).”

조현욱·권근영 기자<poemlov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유홍준 청장=1949년 서울생으로 80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98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3년부터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세 권이 큰 인기를 모았다. 영남대를 거쳐 명지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9월 제3대 문화재청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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