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계 거액뇌물 파문/금융계와 「검은돈」주고받아 줄줄이 쇠고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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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회당 당수·법무 사임… 총리까지 연루설/장관 3명 포함 4백여명 수사대상 올라
기업의 청탁을 받고 정치자금 명목으로 거둬들인 거액의 뇌물을 둘러싼 이탈리아 정계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회당(SPI)의 대부이며 총리를 역임한 베티노 크락시 당수(58)와 차기 총리감으로 물망에 오르던 클라우디오 마르텔리 법무장관(49)이 11일 뇌물스캔들과 관련,각각 현직을 사임했다.
같은 사회당 출신으로 연정을 이끌고 있는 줄리아노 아마토 현총리의 연루설까지 나돌고 있는 가운데 주가·리라화가 폭락하는 등 주름잡힌 경제계로 불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1백10여명이 체포됐고 3명의 현직장관을 포함,4백여명의 정치인·기업인이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이번 정경유착 부정사건으로 이탈리아 전체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크락시와 마르텔리 두 거물의 사임은 80년 당시 이권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챙긴 혐의로 검찰의 소환장이 발부되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건은 81년 경찰이 한 비밀결사조직을 수색하면서 「베티노 크락시를 위한 클라우디오 마르텔리」라고 적힌 메모와 함께 스위스은행에 예치한 비밀예금계좌를 추적하며 시작됐다.
1년전부터 기업과 정치인의 검은 돈에 대한 수사를 펴온 수사당국은 크락시의 사임발표 이틀전 계좌의 가명인이자 크락시의 친구를 체포,문제의 계좌가 크락시의 사회당 정치자금으로 챙긴 7백만달러를 은닉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 자금은 도산위기에 놓인 이탈리아 최대 시중은행이었던 암브로지아노은행의 로베르토 칼비 회장이 자금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5천만달러의 구제금융을 대출받는 조건으로 비밀계좌에 입금시킨 뇌물성 정치헌금임이 드러났다.
칼비 회장은 대출에도 불구하고 82년 은행이 파산하자 런던에서 목매 자살해버려 현재 돈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는 것이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회장 미망인은 한술 더 떠 사회당에 모두 3천만달러를 송금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정확한 뇌물액수에 대한 흑막은 굳게 드리워져있는 상태다.
76년부터 17년여동안 사회당을 이끌어오며 83년부터 87년까지 사회당 최초의 총리를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정계를 주물러온 크락시는 이 사건 이외에도 공공공사를 따기 위한 기업의 이권청탁을 미끼로 돈을 챙긴 사건중 5건에나 연루돼 검찰조사가 진행중이다.
한편 사회당내에서 크락시에 이어 2인자를 자임하며 마피아에 대한 강력응징을 주장해 정치적 신망이 높았던 마르텔리마저 부정스캔들에 나란히 등장함으로써 사회당은 씻을 수 없는 도적적 치명타를 맞아 붕괴위기에 놓여있다. 두 정치거물은 현재 검은 돈에 대한 개입여부를 정치적 모략이라고 일축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혐의선상에 떠오른 인물이 사회당뿐 아니라 정계 전체에 퍼져있는데다 뿌리깊은 정치­기업간 결탁이 속속 치부를 드러냄에 따라 의혹덩어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의회에 진출한 정당만도 16개가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당과 기독민주당이 다수당을 형성,4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하고 있어 정국이 불안한데다 최근 엄청난 재정적자와 11%가 넘는 실업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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