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29) 경기도 광명시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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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의 행시 합격자, 여성 첫 중앙 부처(노동부) 국장, 여성 최초의 관선·민선시장. 전재희(54) 한나라당 의원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1년 남짓 문화공보부에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그는 약 20년간 노동부 노동보험국장·직업훈련국장 등 노동관련 행정전문가로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94년 광명시 10대 시장을 거쳐, 95년 7월 첫 민선시장으로 취임했다.

광명에 처음 부임하자 당시 지역 원로들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광명시를 무시한 처사’라며 불쾌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인식을 바꿔 놓기 위해 그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부임 초부터 퇴임할 때까지 새벽 5시 반이면 이 거리 저 거리를 돌며 시민들의 집앞을 쓸기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빗자루 시장’이다.

“깨끗이 쓸어 놓은 자기 집 앞을 지나는 시민들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배려의 마음가짐이 광명을 살 만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데 바탕이 될 거라고 믿었죠.”

그는 “꾸준한 실천을 통해 체질화된 좋은 습관은 생활 속 작은 개혁의 밑바탕”이라며 “정치도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의 국회의원 후보 경선을 앞두고 얼마 전 그는 지구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지구당위원장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는 우선 공정한 경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선이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으면 당 쇄신은 물건너가고, 정치개혁도 결국 끝장이죠. 지구당위원장 사퇴를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공직 후보자 경선은 당내 민주화를 위한 장치입니다. 당내 민주화는 고비용 정치 개혁과 더불어 정치개혁의 양대 과제구요. 더욱이 이 둘은 서로 밀접히 연관돼 있어요. 고비용 정치구조 때문에 정치가 ‘검은 돈’과 유착하고, 당내 민주화도 안 되는 겁니다.”

그는 지구당 완전 폐지론자다. 당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락사무소는 지구당의 간판만 바꿔다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 지난 12월 29일 정치개혁특위 위원을 사퇴한 그에게 국회가 선거구제와 의원정수를 둘러싼 싸움으로 해를 넘긴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불굴의 의지를 감추고 있는 여성'
여성 정치인 전재희에 대한 한 평가다. 그는 일할 맛 나는 세상은 국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할 때만 이룰 수 있고, 참여가 보장될 때 비로소 국민을 위한 참 정치가 꽃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선거구인 광명시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 관선·민선 시장을 지낸 그는 또 "우리 사회는 여성의 지도력을 더 크게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한 판단 역시 유권자의 몫이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광명시 소하동에서 있었던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석해 환한 얼굴로 배추에 속을 넣고 있는 전 의원(오른쪽).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정치개혁특위가 당론을 바탕으로 합의 처리해야 하는 조정기구라 특위 위원이지만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괴감이 들지만 당론으로 내려진 결정에 대해선 그에 따르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야 물론 적절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자기 소신을 관철하려고 노력해야죠.”

98년 7월 치러진 광명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그는 당시 집권당의 총재권한대행과 맞서 코 밑까지 따라붙는 선전을 했다. 16대 국회에 전국구로 등원한 그는 지난해 8월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56.4%의 득표율로 여당인 민주당의 중진을 물리쳤다.

그가 시장 시절부터 골몰하고 있는 광명의 현안은 교육과 환경이다. 수도권인 데도 대학교 하나 없고 점차 베드타운화하고 있는 것. 고속철역과 경륜장 등 주변 역세권을 어떻게 개발할 건가도 주요 현안이다.

“광명에서 시장 두 번 하고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광명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광명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고 감히 자평합니다. 다시 광명을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지면 나름대로 그린 청사진을 완성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는 돈 받은 유권자도 돈 뿌린 후보자와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단 처벌에 대해 뚜렷한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정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선거와 달리 국회의원 총선은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다는 뜻 외에 그 대표자에게 나라의 일을 처리하도록 책임을 지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뽑은 대표자를 심판한다는 의미가 있죠. 내년 총선이 축제요 잔치가 되려면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후보자는 물론이고 유권자들도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당당한 유권자야말로 정치 선진화의 주역입니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 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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