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수록 깊어지는 「부정의 골」/끝이 안보이는 대입부정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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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은 돈에 밀려 정당한 합격자 희생 광운대/범인과 특정대학 교직원 관련 의혹 대리시험
새정부출범을 눈앞에 두고 터져나온 입시부정 파문은 과연 어디까지 번져갈 것인가.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그간 시중에 나돌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사건은 경찰수사가 진행될수록 양파껍질 벗겨지듯 그 추악상이 드러나고 있다.
또 어느대학에서,다른 어떤 방법으로 부정과 비리가 저질러졌는지,과연 「우리는 결백하다」고 자신할 대학은 있는 것인지,사건이 진행될수록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경찰수사가 어디까지 가 있는지 정리했다.
◇사건의 성격=이번 사건이 복잡한 이유는 광운대의 변칙기부금입학과 한양대·덕성여대·국민대 등의 대리시험사건이 뒤섞여 터져나왔고 관련자들도 서로 얽히고 설켰기 때문이다.
전체로 보자면 「총체적 입시부정」이지만 좁게는 대학측의 「성적조작을 통한 기부금입학」과 대일외국어고 전·현직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대리시험」으로 대별된다.
현재까지 1백여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 광운대의 변칙기부금입학은 그동안 타 대학에서 일어났던 부정입학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타 대학의 경우 미등록생 결원보충이나 교직원 자녀들에 대한 특혜 등 비록 부정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합격생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학의 재정난을 고려할 때 무조건 매도할 수만은 없다』는 동정론까지 있어왔다.
그러나 광운대의 경우 합격순위를 조작해 마땅히 합격해야할 다른 학생들을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있다.
광운대는 또 1백20억원짜리 건물신축공사를 미리 시작해 놓고 그 액수에 맞춰 학생들을 뽑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광운대의 변칙기부금입학에 현직고교교사들이 중간브로커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고있어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교사·학부모들의 무더기 구속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리입학시험 사건은 대일외국어고 교사들을 중심으로 저질러졌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남의 눈을 피해가며 남몰래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무실을 차려놓고 신문광고까지 내가며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부정입학을,그것도 대대적으로 자행했다는 점이다.
두사건의 배경이 된 것은 결국 황금을 앞세워 자식의 장래마저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학부모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사회풍조이겠지만 그 장단에 맞춰 꼭두각시 노릇을 한 대학과 교사·대학생들이 용서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편법 기부금입학=광운대 입시부정은 총장을 중심으로 「거교적으로」 저질러졌다.
사건이 알려진 것은 총장의 누나인 조정남씨(61)가 92년 고모씨(50)로부터 딸을 합격시켜준다며 7천여만원을 받았다가 일이 제대로 안돼 돈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고씨측이 「웃돈」을 요구해 분쟁으로 번진끝에 고씨가 경찰에 이를 제보하면서부터. 경찰은 2일 조씨를 연행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씨의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억원의 돈이 입·출금돼 있음을 확인했다.
학생 세명의 부정합격으로 끝나버릴 것 같던 광운대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것은 과연 어떻게 컴퓨터를 조작해 합격자의 순위를 뒤바꿨는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교무처장 조씨와 전영윤교무과장이 사건보도직후 입학생들의 객관식 답안지 OMR카드 4만5천장을 들고 달아난 사실이 확인됐고 「부정입학생이 세명뿐이 아니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경찰은 5일 학교에서 마그네틱 테이프를 압수해 정밀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금년 후기입시에서만 서울시내 27개 고교에서 32명이 부정입학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광운대의 편법입학과정에서 1백억원이상의 돈이 오갔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부정입학생 등 학부모의 신원이 드러남에 따라 파문이 확대될 조짐이다.
현재까지 광운대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관리처장 장씨와 전산소장 김순협교수,모집책이었던 조정남씨,교사 이두산씨,학부모 최애선씨(44) 등 8명이며 사건의 열쇠를 쥔 교무처장·교무과장과 학부모 두명 등 5명은 달아나 수배중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조무성총장의 묵인 또는 지시로 이뤄졌다고 보고 현재 미국 LA에서 신병치료중인 조 총장이 돌아오는대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교육부는 7일 광운대에 대한 관선이사 파견을 결정했으며 정원감축 등 응분의 조치를 할 방침이다.
◇대리시험 사건=범인 신훈식씨(33·광문고교사) 일당은 지난해부터 범행을 모의하고 사무실을 얻은뒤 신문광고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명문대 합격생들을 모집했다. 신씨일당은 일단 포섭대상이 된 학생들에게 수만∼수십만원씩의 용돈을 주고 관리를 해오다 결정적 순간에 대리시험을 부탁,거절할 수 없게 만든 뒤 금년 전·후기입시를 통해 한양대와 덕성여대 등 두대학에 김모군(19) 등 6명을 부정합격시켰다. 신씨 등이 학부모로부터 받은돈은 3천만∼1억5천만원으로 모두 5억여원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네건의 대리시험을 시도했고 대리시험학생을 못구하거나 돈을 준 학부모가 마음을 바꿔 모두 실패했다고 진술했으나 이모군(19)이 전문대에 대리시험으로 합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자백하지 않은 범행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특히 신씨일당이 지난해와 금년에 범행대상으로 삼은 대학이 한양대 9건,덕성여대 두건,고려대병설 전문대 한건 등으로 특정대학에 집중돼 있어 교직원과 연관 의혹도 사고있다.
구속된 사람은 주범 신씨 일당 6명과 학부모 세명,대리시험대학생 5명 전원 등 모두 14명이며 브로커 김광식씨와 학부모 윤춘희씨(45·여) 등 7명이 수배중이다.
국민대 대리입시사건은 김성수(38)·정인석(38) 교사 등 2명이 학부모 심종복씨(46·여)로부터 3천만원을 받고 제자인 조성구군(19·연대합격생)에게 심씨 아들 송모군(19)의 대리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다.
김 교사등 두명은 달아나 수배중이며 학부모 심씨,대리시험을 치른 조군 등 두명은 구속됐다. 신씨일당과 김씨일당으로 나눠지는 대리시험사건은 이들이 모두 대일외국어고 교사출신이며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이 확인돼 신·김씨가 서로 정보를 교환해 가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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