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뜨거운 기름'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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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날씨가 더워지면 휘발유는 팽창한다. 이런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차에 기름을 넣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 같은 값으로 더 적은 휘발유를 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본 부당한 이득을 돌려달라는 집단소송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5일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따르면 수백 명의 미국 운전자들은 지난해 말부터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주유소들이 여름에 휘발유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이 수조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캔자스시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브렌트 도널드슨은 고소장에서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에 소비자들은 L당 10~30원씩 손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소송은 10여 개 주에서 수백 건이나 된다. 관련 소송들은 지난달 캔자스주 연방법원으로 모두 통합됐다. 피고는 엑손모빌.셰브론 등 다국적 정유사와 월마트.세븐일레븐 등 유통업체까지 100개 회사를 넘는다.

원고와 피고 양측은 모두 이번 재판에 전문가를 내세우고 있다. 원고 측이 법정에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값은 1920년대부터 섭씨 15도(화씨 60도)를 기준으로 한다. 15도에서 1L였던 기름은 기온이 1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1L를 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름을 사는 모든 소비자는 그만큼씩 손해를 보는 셈이다. 휘발유의 이런 속성에 따라 정유사들은 도매업자에게 팔 때는 기온이 올라가면 가격을 그만큼 낮춰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석유마케팅협회의 댄 길리건 회장은 "원고들은 잘못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 수조원의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운전자들은 겨울에도 기름을 넣는다"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소비자들은 겨울에는 이득을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미 의회도 이번 재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의회의 한 분과위원회 보고서는 미국인들이 이번 여름에만 '뜨거운 기름'으로 15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더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의 초점은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부당이익을 얼마나 봤느냐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부당이익을 본 것으로 드러날 경우 주유소에 휘발유 온도를 15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필요한 장치를 의무화할 것이냐도 쟁점이 되고 있다.

관련 업계는 이 장치가 개당 140만~350만원으로 매우 비싸다며 의무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고 측 변호사들은 미국보다 추운 캐나다에서는 주유소에 이런 장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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