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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변호사 혁명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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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로스쿨(Law School·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 확정됐다. 13년간의 논의와 국회 본회의 직권상정까지 거치는 오랜 산고 끝에 탄생했지만 옥동자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건물로 치면 급한 대로 골조만 세운 격이다. 외장도 마무리하지 않은 건물을 아름답고 실용적인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는 그간의 진통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우선 로스쿨 인가와 정원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로스쿨 정원을 얼마로 하고, 이를 어떤 학교에 몇 명씩 배정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원은 향후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와 관련이 있어 법조계도 예의 주시한다. 그간 로스쿨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계속될 경우 2009년 3월 신입생 모집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3000명 이상을 원하는 학계와 1200여 명이 적정선이라는 법조계의 주장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숫자의 중간 절충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해법은 로스쿨 도입 의도를 원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가능한 한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취지라면 가능한 많은 법조인을 길러내는 게 소망스럽다. 배출되는 법률가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엄격한 설치 기준과 철저한 교육 과정 관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히 소송 사건 통계를 기준으로 로스쿨 입학생과 변호사 합격 숫자를 제한하는 것은 로스쿨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로스쿨은 획일적인 ‘관료법학’을 벗어나 다양한 배경과 전문지식을 가진 법조인 양성이 목적이다. 교육기간 연장, 취약 계층의 진입장벽, 비싼 등록금 등 로스쿨의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현실이 로스쿨 도입에 적합한지 회의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의 긍정적 측면은 이를 상쇄할 수 있다.
 좋든 싫든 세계의 법질서가 점차 미국법으로 통일돼 가는 추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우리 측 사령탑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상대인 캐런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같은 미국 로스쿨 출신이라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 로스쿨에서 교육받은 법조인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상교섭 등 개방 과정뿐 아니라 유엔과 산하기구, 국제사법재판소 등 수많은 국제기구와 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법조인도 길러내야 한다.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새롭게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중앙아시아 국가 등에 법률적 인프라 구축을 도울 수 있는 법률가도 필요하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현재 사법연수원 졸업생 가운데 매년 150여 명은 이미 비법조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변호사들이 새로운 직역(職域)과 법률서비스를 개척할 것은 불문가지다.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임용되던 판·검사 충원도 변호사 경험자 중에서 임용하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남북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가 역시 그 수요가 만만치 않을 게 분명하다. 서초동을 중심으로 한 국내의 소송사건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아닌 것이다.

 로스쿨 도입은 숱한 난제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어려움만 논의한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로스쿨이 미국과 극소수 국가 외에는 없는 제도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런 제도를 수용함으로써 희귀성을 살려 세계 법률시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이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로스쿨의 근본 취지를 살리지 못한 때문이다. 학부와 로스쿨을 함께 존치시키고 로스쿨 정원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도록 변호사시험(신사법시험) 합격자를 제한하는 게 그것이다. 정원 논쟁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힘으로써 법조 실무계와 학계가 국내와 국제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로스쿨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