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마피아 콩쿠르' 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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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90년대 이래 '마피아 콩쿠르'라는 루머에 휩싸여 왔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제13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스페인 피아니스트 호아킨 소리아노의 얘기다. 러시아 특유의 폐쇄적인 운영 방식이 지금까지 이 같은 얘기를 부추겨 왔다.

하지만 콩쿠르 운영위원회 올레그 스코로두모프 사무국장은 "올해로 49년째를 맞는 콩쿠르에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퀸 엘리자베스 등 경쟁 콩쿠르에 밀릴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정부와 조직위원회를 긴장시켰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차이콥스키의 명성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4월 타계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를 올해의 대회장에 임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 세계 기업에 그대로 전달됐다. 메인 스폰서인 도요타는 150만 달러를 내놨다. 미국 회사인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러시아 내 협력기업까지 치면 총 31개 회사가 이 콩쿠르를 지원했다.

수상자에게 돌아가는 상금은 5년 전 12회 대회와 같았지만, 참가자들의 비행기 삯과 숙박비에 대한 지원금은 서유럽 국제 콩쿠르 못지않은 수준으로 뛰었다. 스코로두모프는 "지난 12회 대회(2002년) 때만 해도 운영위원회 사무실에 프린터가 없었다"며 "하지만 올해는 웹사이트를 새로 정비했고, 스태프도 배로 늘렸다"고 말했다.

마케팅.홍보도 강화했다. 홍보 회사 '사브 엔터테인먼트'와 'NFQ 애드버타이징'이 콩쿠르의 홍보를 전담했다. 외부 기업에 전문 홍보를 맡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폐쇄적이었다는 지적에 응수라도 하듯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3주 동안 30번이 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관계자들은 채점 과정.결과를 공개했다. 외신기자 100여 명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물론 각 부문 3위 내 입상자 14명 중 8명이 러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폐쇄적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콩쿠르를 지탱하는 힘은 또 있었다. 바로 음악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사랑이다. 3일간 콩쿠르 최종 결선의 25차례 경연에는 2만 명이 넘는 청중이 모였다. 젊은이는 물론이고 머리가 하얀 노인 관객도 많았다. 2회 대회가 열린 62년부터 매년 콩쿠르를 봤다는 '할머니 청중' 리나 바우씨나(62)는 "러시아인에게 이 콩쿠르는 단순한 대회라기보다는 세계인이 화합하는 경축일"이라고 말했다. 변화와 전통이 함께하는 이 콩쿠르는 세계 수준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국내 콩쿠르에 시사하는 바가 커 보였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