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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빈약 연극계|"동면 끝" 새 기지개|국립극장『홍동지는…』|목화레퍼터리『백마강…』|극단아미『북어대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창작극 빈곤」이라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연극계가 회 생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 몇몇 번역극과 스타를 앞세운 상업성 연극으로 겨우 체면을 유지했던 연극계가 2월 이후부터 의욕적인 창작극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창작극의 빈곤은 사실 좋은 희곡이 없다는데 원인을 두고 있어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희곡의 작품성은 구체적인 무대화과정에서 많은 부분 보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깃이 우리 연극계의 큰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번역극만으로는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좋은 창작극의 개발은 우리 연극계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창작극 활성화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작품은 극단 아미가 2월 11일부터 공연하는『북어대가리』다.
조그만 창고 속에 갇혀 사는 두 명의 창고지기가 주인공. 매일아침 찾아오는 화물트럭에 부속품상자를 싣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여기에 트럭운전사의 딸이 끼어 들면서 이들의 기계적인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삶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극히 작은 부속품처럼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희비극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광림씨는『몸둥이를 다 잃고 머리만 덜렁 남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북어대가리라는 은유가 관객에게 실감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무송·최종원 등 실력파 연기자들이 참여한 것도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한다.
새로 문을 여는 예술의 전당연극극장의 개관기념공연인 목화 레퍼터리의『백마강 달밤에』도 창작극 활성화에 일조 할 것으로 보인다.
오태석씨의 연출로 2월 17일부터 25일까지 공연하는 이 작품은 우리의 토속적인 정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 쓸쓸히 죽 어간 의자왕의 원혼을 달래는 제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대동 굿의 요소를 대폭 차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정서의 현대화라는 형식적인 측면 뿐 아니라 한국사의 왜곡된 뿌리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작품이다.
국립극장은 지난해 창작극공모에서 당선된『홍 동지는 살아 있다』를 이윤택씨의 연출로 3월 26일부터 공연한다.
홍 동지라는 자연에 묻혀 살던 인물이 문명사회에 나오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재치 있게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외래문명에 맞서 싸우는 한국적인 혼의 강인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밖에 80년대 우리연극의 창작극을 주도해 왔던 연우무대도 그간의 사회성 짙은 작품경향에서 벗어나「연극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새로운 창작극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두 노인의 사랑을 사색적인 대사와 진솔한 연출을 통해 깊은 감동으로 끌어올린『해질녘』과 옷가게에 침입한 세 도둑을 통해 제도적 권위에 대한풍자를 그린『마술가게』를 지난해 말부터 장기공연중인 연 우는 올해도「창작극연구발표」를 통해 신작을 계속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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