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제 식구 감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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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루이스 리비(56.사진)가 위증과 사법방해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부 사면(감형)'으로 징역살이를 면했다. 리비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유출 사건인 리크 게이트(leak gate)와 관련해 2년6월의 징역형과 25만 달러 벌금형, 2년간 보호관찰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리비의 징역형을 사면하고, 다른 형벌은 놔두는 조치를 취했다. 리비는 연방항소법원이 수감 연기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곧 감옥에 가야 할 처지였다.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판사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리비에 대한 징역형은 과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그가 곧 감옥에 가야 할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에 대응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량 중 30개월의 복역 부분만 감형하는 만큼 혹독한 처벌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리비는 공직자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얻은 명성에 영원한 상처를 입었고, 그가 저지른 중범죄의 대가는 오래 지속할 것"이라며 그가 충분한 처벌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이런 설명은 체니 부통령의 핵심 측근인 리비의 감옥행을 막은 부시의 조치가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리비는 리크 게이트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위증하고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리크 게이트는 2003년 7월 조셉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가 "백악관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조작했다"며 이라크전의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자 부시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그의 부인이자 CIA 요원인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언론에 흘린 사건이다.

부시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민주당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범죄를 묵인하는 것으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말했다.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역사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권한을 남용, 자신의 사람을 위해 특혜를 베풀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며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야유했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법을 무시하는 부시 대통령의 행위로 그에 대한 냉소주의가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 고위 관리가 재직 중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1986년 이란-콘트라 사건 이후 처음이다. 적성 국가인 이란에 무기를 비밀리에 판매하고, 그 대금 일부를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는 데 사용한 사건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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