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고사로 교육 혁명을(유승삼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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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파리 샤이요궁 정면 벽에는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텍스트가 적혀 있다. ­내가 무덤이냐,보석이냐 하는 것은 내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말을 하느냐,입을 다무느냐는 그대에게 달려있다. 친구여,욕망이 없거든 들어오지 말라.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문학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규정해보라」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프랑스 고교생들이 2학년말에 치러야하는 국어시험문제의 한 예다.
○중고생때가 독서 적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각의 독자가 책을 읽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읽는 독자다. 책은,만약에 그 책이 없었더라면,그 독자가 자기자신의 내면속에서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시각적 도구에 불과하다.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독자가 자신의 내면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그 책의 진실의 증거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우리들에게 문제자체부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런 문제에 대해 프랑스 고교2년생들은 3시간안에 시험지 앞뒤 분량의 답안을 작성해 내고 있다. 프랑스인의 타고난 재능이 우리보다 우수하기 때문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프랑스 고교생들에게는 가능한 것이 우리의 경우는 문학전공의 대학생들에게도 어려운 것은 재능의 차이때문이 아니다. 단지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올해를 「책의 해」로 정하고 「책을 펴자,미래를 열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난 19일에는 「책의 해」 선포식까지 가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가 이렇듯 앞장서서 책을 읽자고 국민을 독려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말고는 또 없을 것이다. 책의 중요성,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자체만은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책읽기가 이런 한 때의 행사나 구호로 가능해지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달콤한 생각이다.
말을 배우는데도 일정한 시기가 있는 것처럼 책읽기를 습관화하는 데도 일정한 시기가 있다. 일단 그 시기를 놓치고 나면 습관화는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감수성의 개발은 더욱 더 그렇다. 나이가 들면 이해력은 높아질 수 있으나 문화적·예술적 감수성은 퇴보하면 했지 심화되지는 않는다.
○교과서에 없는건 몰라
그런데 우리 2세들은 책읽기를 습관화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감수성의 개발에 가장 좋은 연령기인 중·고교시절을 입시기계가 되어 그저 좁디좁은 교과서의 세계속에서,그것도 사지선다형의 문제에 응답하는 골라잡기훈련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 중진국 가운데서도 책을 가장 적게 읽고 국민의 태반이 문화문맹·예술문맹이 되고 있는 근본요인이다.
성인에 있어서나,청소년에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소월과 윤동주다. 소월과 윤동주가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시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대를 초월해 이들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이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의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꼽히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시가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것,즉 교과서이외에는 아무 시도 읽지 않았다는 서글픈 반증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현실을 혁파하지 않고서는 문화적 축적도 이루어질 수 없고 정치의 후진성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지연·학연과 같은 비합리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그 뿌리는 교육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성장과정에서 논리적 사고와 판단력을 기르는 훈련과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대 등에서 본고사때 도입할 것을 검토중인 논술고사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는 초·중·고교 교육뿐아니라 대학교육,나아가선 사회전체의 성격과 질,그리고 내용까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학을 마쳐도 간단한 글쓰기도 제대로 못하고,대화나 토론은 몇마디 안나가 싸움으로 변하고,여가생활은 골프·고스톱,아니면 TV나 보고 낮잠이나 자는 식의 단조로움을 보이고 있는 것도 교육현실,특히 입시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학은 과감히 선택을
논술고사 하나가 그런 교육현실을 개선하는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으나 문제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서는 변화의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다. 입시준비의 내용이 예술적 감수성을 기르고 논리적 사고를 키우며 말하고 듣고 쓰는 삼위일체의 언어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면 밤을 새운다 한들 나쁠 것이 없다.
대학입시의 논술고사화는 과도기적으로는 다소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수술에 있어선 어느 정도의 통증은 불가피한 것이다.
대학측은 과감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세칭 일류대만이라도 과감히 논술고사를 채택한다면 우리 교육엔 혁명의 바람이 불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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