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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보전쟁 태세 급하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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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또는 기업의 경쟁력이 기술 수준에 따라 좌우되는 고도산업사회에서는 그 기술을 담은 정보와 지식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군사력에서 경제력 쪽으로 국가발전 전략요소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각국의 정보기관들마저 군사정보 못지 않게 산업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정보를 훔친 한 호주인이 25일 경찰에 검거된 사건은 이제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산업정보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디스켓을 도난당한 삼미기업은 일본 아이와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 등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기업들에 납품을 할 정도로 스피커제조기술에서는 일류의 기술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이래 우리 기업들의 국제화가 진전되면서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한국산업의 일부 첨단기술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의 산업현장이 국제적인 산업스파이사건의 무대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잠재해 있었다고 봐야 한다. 84년 포철에서 일본기업소속 직원들이 기밀서류를 빼내려다 적발된 것은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이번 삼미기업의 디스켓절도는 국내의 기업기밀을 외국기업에 팔아 넘기기 위해 외국인이 직접 범행에 나섰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언어장벽은 물론이고 한국의 기업조직이나 경영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기업기밀에 접근할 엄두를 낼 정도라면 우리 기업의 보안상태에 대한 일방적 인식이 어떻게 돼 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호주인 산업스파이 사건은 따라서 한국산업의 보안강화를 위한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기업비밀의 생산과정·등급분류·관리와 파기에 이르기까지 비밀을 취급하는 전 과정이 허점투성이로 돼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사정은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대한상의가 작년 5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술상의 비밀을 보유한 기업이 전체기업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영업비밀에 대한 법적 분쟁을 경험한 업체도 9%에 달했다. 기업활동의 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컴퓨터와 디스켓을 이용한 정보의 부정유출은 한층 빈번해지고 유출되는 정보량도 대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차원에서 사원들의 보안교육을 강화하고 기밀관리업무를 치밀하게 수행하는 등의 경영실무적인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정부도 기업기밀보호와 관련되는 법규의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의 관련법규들이 기업비밀보호의 실효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만큼 이들 법규들에 대해서도 차제에 면밀한 재검토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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