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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클린턴 첫 인사/문창극 워싱턴특파원(특파원시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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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벌·경력에만 집착 윤리성 소홀/비판 거세자 법무장관 지명 철회
빌 클린턴대통령은 법무장관겸 검찰총장으로 지명한 조 베어드여사(40·여·변호사)가 상원의 인준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지명을 스스로 철회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 등 행정부 고위직의 경우 반드시 의회인준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 미국에서 그같은 인준이 불발로 그친 경우는 한두사례가 아니고 또 클린턴이 임명한 나머지 20여명의 각료들이 모두 인준을 끝내 이 한 사례가 클린턴대통령에게 그다지 큰 타격을 준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2백년 역사 가운데 상원의 표결이 있기전에 인준을 철회한 경우는 이번이 다섯번째이며 법무장관으로서 임명이 철회된 것은 1백20년전 한차례 빼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임원철회는 가벼운 사건이 아니며 클린턴으로서는 소위 용인을 하는데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베어드에 대한 상원의 인준거부 움직임은 지극히 작은 일에서 비롯됐다.
남편이 예일대 교수며 자신은 일류 보험회사의 고문변호사로 소위 맞벌이부부인 베어드가 집에서 3개월된 아들을 돌봐줄 보모로 불법체류자인 페루여자를 고용했다는 사실때문이다.
베어드의 남편 역시 불법체류자인 이 보모의 남편을 운전사로 고용,이 부부에 대해 숙식을 제공하면서 매달 2천달러씩을 지급했다.
문제는 우선 취업을 못하게 되어 있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점이고 누구든 사람을 고용해 쓰면 임금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이를 내지 않았다는 두가지 위법 사실 때문이었다.
베어드는 이달초 자신에게 법무장관 제의가 왔을때 자신이 이러한 사실이 있음을 클린턴 취임준비위측에 통보했고 이에 대한 벌금 2천9백만달러와 미납세금을 뒤늦게 모두 자진 납부했다.
베어드는 또 이 페루부부의 정상적인 취업을 위해 이미 지난해 여름 이민국에 신청을 해놓고 있었던 중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를 지명했다. 그녀도 사전에 상원 법사원 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자신의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으며 청문회에서도 어머니로서 아들을 돌봐줄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저지른 일이며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고 반성했다.
그러나 미국은 클린턴의 취임전후 며칠간 인준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이 문제로 시비가 분분했다.
과연 이 일이 사소한 일이냐는 점에 대한 시비 때문이었다.
미국의 여론은 이 사실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데로 모아졌으며 처음에 인준을 하려 마음먹었던 상원의원들도 지역구의 빗발치는 항의전화에 못이겨 결국 인준불가로 선회하게 됐다.
대세가 이런 쪽으로 흐르자 문제가 된 이후에도 베어드 지지를 강조했던 클린턴이 청문회가 끝난뒤 22일 새벽 지명철회를 선언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소위 공직자로서의 윤리문제였다.
불과 40세인 베어드는 예일대 법대 헌법학교수인 남편과 같이 일류대를 나와 지금은 일류 보험회사에서 50만달러의 거액연봉을 받는 엘리트중의 엘리트다. 베어드의 남편도 교수봉급이외에 강연·저작 등을 통해 1백80만달러를 벌어 이들 부부의 연간수입은 무려 2백30만달러에 달한다.
미 평균가계수입으로 본다면 1%안에 드는 상위그룹중의 상위그룹이다.
문제는 이렇게 똑똑하고 수입이 좋은 젊은 부부가 불법을 저지르고 그 불법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지냈다는 점이다.
이를 일부에서는 여피(젊은 도시전문직업인)족의 윤리관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류학교를 나와 최고의 봉급을 받아가며 일류 물건만을 선호하고 자신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 최근 미국의 엘리트군을 전형적으로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같은 윤리관이 클린턴내각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이다. 클린턴내각의 20명 가운데 16명이 일류변호사 또는 박사학위 소지자인 동시에 전원이 작년 최소 10만달러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엘리트중의 엘리트들로만 이루어졌다. 개중에는 백만달러가 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클린턴이 내각을 구성하며 젊고 패기있고 학벌좋고 똑똑하고 화려한 이력을 지닌 사람들을 뽑아는 놓았으나 그러한 인물들이 과연 미국을 도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회의가 던져진 것이다.
또하나 모양새를 중시한 클린턴의 인사가 이런 사건을 야기시켰다는 지적이다. 클린턴은 선거운동 당시 여권신장을 내세웠고 따라서 조각 과정에서 여성운동단체의 압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압력과 내각의 모양새 때문에 법무장관은 여성으로 한다고 먼저 정해놓고 처음 내정한 연방법원의 한 여성판사가 이를 거부하자 허겁지겁 다른 여성가운데 고른 것이 베어드변호사였다.
신임 미 법무장관 지명에 얽힌 소동은 새정부에서 일할 인물을 한창 고르고 있는 한국도 타산지석의 교훈이 될듯 싶다.
그동안 역대 한국정부가 인물을 고르며 학벌좋고 똑똑하고 화려한 이력서에만 집착해 그 인물이 과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공직에 내세우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이었느냐에 소홀했던 관행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의 사회문제가 지도층이란 윗물이 혼탁해서 누적돼 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베어드사건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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