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권력」 보여준 미대통령 취임식/문창극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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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대통령 취임식은 민주주의국가에서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의식이었다.
어제까지 국가원수요,군통수권자였던 조지 부시대통령은 취임식에 빌 클린턴 새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해 클린턴의 취임선서를 지켜본뒤 취임식장인 의사당 뒷마당에 대기중인 헬기로 식장을 떠나 고향인 텍사스주로 돌아갔다.
반면 아칸소주의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새 대통령이 된 클린턴은 선서뒤 의사당에서 백악관으로 통하는 펜실베이니아가를 따라 백악관으로 진입했다. 한 사람은 권력자에서 즉시 평범한 시민으로 다른 한사람은 평범했던 시민에서 권력자로 바뀐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날 저녁 가까운 친구 몇몇을 모아 대통령으로서의 최후의 만찬을 들며 『이제 내일 내가 의사당을 걸어나가면 나는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면서 『내 가슴 속에는 아무런 회한이나 씁쓸함이 없다』고 담담한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며칠전 한 잡지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인터뷰를 끝내고 분장을 지우면서 분장사에게 『내 이름이 전화번호부책에 나와 있을테니 잊지말고 기억해달라』고 당부하는 농담을 던졌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이라는 것이 한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며 국민이 위탁한 일정기간이 끝나면 또다른 국민의 대표자에게 넘겨주는 한시성의 권한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새로 들어선 클린턴대통령은 취임순간부터 사실상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의 권력관 역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 미국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미국의 약속을 함께 바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적 특권을 배제해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특권의식을 버릴 것을 촉구했다.
이 취임식을 구경하기 위해 우리 국회의원들이 대거 워싱턴에 몰려왔다.
받지도 않은 초청을 받았다고 발표해 놓고 마치 경축사절단인양 소문을 내놓고 이곳 저곳 수소문해 간신히 얻은 입장권으로 수만명과 함께 끼여 취임식을 구경했다 하더라도 느끼는 바가 많았으리라고 본다. 기왕 돈을 쓰고 온바에야 엉터리 같은 사진이나 찍어 국민을 속이려고만 하지 말고 이런 좋은 말들을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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