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 1천년의 맥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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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려 고자·조선 백자와 함께 한국 도자 1천년의 맥을 이어온 분청사기를 시대·기법·지역별로 재조명함으로써 한국도립사의 흐름을 정리해 보는「분청사기 명품 전」이 20일부터 3월 30일까지 호암 갤러리(751-5865)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분청사기 중 분청사기 철화어문호(787호),『분청사기 조화수조문편병』(1069호), 분청사기 조화박지모단문장군(1070호)등 보물 3점을 포함해 기법·기형별로 엄선된 2백50여 점이 선보인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곁가지로 출현한 특이한 양식이다. 그러나 고려의 바탕 위에 조선의 기운이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도자 미학을 창출했다.
현대적 미의식에서 보자면 청자·백자보다 더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방기도 하는데 15-16세기 동안 백자와 더불어 궁중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사용돼 왔다.
분청사기는 회색이나 회 흑색의 태 토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투명한 분청유를 씌워 구운 것으로 표면의 문양장식 기법에 따라 상감·인화·조화·박지·철화·귀얄·덤범분청으르 나뉜다.
또 분청사기는 영남·호남, 그리고 충청도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중부권 등 3개 지역에서 발전했는데 지역에 따라 뚜렷한 기법상의 특징과 맛의 차이를 보인다.
영남지방의 분청사기는 상감기법·인화기법이 두드러지며 규율에 충실하는 등 고려청자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다. 궁중에 진상된 분청사기는 주로 영남지방의 가마에서 구워진 것들이다.
호남지방의 분 청은 조화·박지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활달한 선과 세련미가 조화를 이뤄 예술성이 뛰어나며 한국미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청도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중부권의 분 청은 영남의 붓 사용법, 호남의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융합해 반추상의 철화분청을 탄생시켰는데 호방한 붓 놀림이 일품이다.
고려의 도공 후예들이 약1백년에 걸쳐 조선의 시대이념을 서서히 방아들이면서 분청사기도 자연스럽게 소멸돼 갔다.
중부권이 가장 먼저 백자의 새로운 맥을 확립했고 수도권에서 먼 호남지방이 분청사기의 전통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했다.
호암미술관은 1년 반 동안의 준비 끝에 연구자들에게는 분청사기를 체계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폭넓은 감상기회가 될 수 있도록 이 전시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즉 분청사기의 발생·발전·소멸과정과 지역 및 각 기법의 세부적인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비교 전시하고 있다.
또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장 한쪽에 28평의 전통 분청사기 작업실을 마련, 도공이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전과정을 실연할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이 초벌구이에 문양을 그리거나 자기 이름을 새겨 넣는 등 직접 제작에 참여해 분청사기의 생생한 맛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희망자에 한해서는 직접 참여해 만든 분청사기를 판매도 한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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