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매력 있는 후보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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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7년 대선을 2년 남짓 앞둔 95년 9월 어느 날의 일이다. 당시 김영삼(YS)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야당 대선 후보는 김대중(DJ)이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불쑥 던졌다. 인터뷰 내용에 알맹이가 없어 YS를 자극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YS와 DJ는 민주화 투쟁의 오랜 동지이면서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때까지 웃음을 띠며 여유 있게 답변하던 YS가 갑자기 “누가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냐”고 버럭 화를 냈다. DJ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눈꼴시어 못 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그 몇 달 뒤 이원종 정무수석이 불쑥 “이번 대선은 아무래도 DJ가 먹을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YS의 복심(腹心·속마음을 대변하는 사람)’ ‘왕수석’으로 불리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뜻밖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3당 통합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YS가 대통령이 된 것은 상도동계가 똘똘 뭉쳐 생사를 같이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동교동계가 그런 것 같다. 민자당에는 그런 세력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97년 대선은 그의 예측대로 DJ가 승리했다.

 물론 상도동계나 동교동계 같은 보스정치는 사라졌다. 충성을 바치는 가신도, 카리스마를 가진 주군도 이제는 없다. 그런 정치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수석의 말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다. DJ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당선됐다. 자생적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있었고, 천정배·유시민·이강철·염동연·이광재·안희정 등이 있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만났던 이들은 한결같이 “노 후보가 낙선하면 나도 정치를 접겠다”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에 사람이 더 많지 않았느냐고? 물론 당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 보였기에 새 정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몰려든 사람은 넘쳐흘렀다. 그렇지만 이 후보의 당선에 자신의 삶을, 또는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건 사람은 만나기 어려웠다. “이 후보가 패배하면 나도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人)의 장벽’이 높게 세워졌고, 그것이 결단해야 할 때 회피하는 긴장의 해이를 가져왔고, 이 후보의 눈을 가렸다. 이 후보의 패배는 ‘김대업 파동’ 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지만 헌신적인 사람을 주변에 두지 못했던 탓도 적지 않다.

 2007년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각 캠프의 결속력이다. 정치는 현실이기에 오는 사람을 내치기는 어렵다. 공천받으려고, 또는 차기 정권에서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도 선거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고 공격해 대고 논리를 내세우기에 나중에는 어느 쪽이 나은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럴 때 판단의 잣대로 유용한 게 바로 ‘헌신도’와 ‘결속력’을 따져보는 방법이다. 후보에 ‘감정이입’을 한 사람, 헌신적 자원봉사자, 정치 생명을 건 정치인들이 얼마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해관계만으로 모인 자들은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위기에 봉착하면 쉽게 떠나버린다. 반면 확신에 찬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강한 전파력을 가진다.

 그런 사람들이 후보 주변에 있다는 건 후보가 ‘매력’이 있다는 증거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수석 자리, 공천 약속을 넘어선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판사와는 달리 정치인에겐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야 대통령이 됐을 때 사회적·정치적·계급적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다. 인간적인 끌림, 소신에 대한 감동, 비전에 대한 공감,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정치인의 매력을 구성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나 박근혜 후보는 지금쯤 주변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과연 나에게 자신의 인생을 ‘올인’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범여권의 20명 가까운 후보 희망자도 한 번 돌이켜 보라.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일찌감치 꿈을 접는 게 낫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