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여객기추락] 마지막 교신으로 본 사고의 재구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시아누크빌, 여기는 U4-241."(조종사)

"U4-241, 시아누크빌. 현재 고도는?"(관제탑)

"고도 2000피트(600m)으로 날고 있다."(조종사)

"(4000피트산(1200m)로 날아야 하는데) 고도가 너무 낮지 않나?"(관제탑)

"내가 이 지역을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조종사)

25일 오전 10시37분(현지시간.한국시간 낮 12시37분)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르(해발 1080m) 인근 상공.

캄보디아 국적 PMT 항공 소속 U4-241편 여객기(AN-24기종) 조종사가 도착 예정지인 시아누크빌 공항(KOS) 관제탑 요원과 무전교신을 했다. 승객 16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이 비행기는 이날 오전 9시52분 북부 시엠리아프(REP) 공항을 떠나 남부 시아누크빌을 향하던 중이었다. 우기(雨期)를 맞아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앞을 볼 수 없어 육안비행이 힘들 정도였다. 이 지역은 한 해 강우량이 4500㎜ 정도다. 요즘과 같은 우기엔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차라리 물이 쏟아질 정도'로 비가 온다고 한다.

조종사는 무전기로 공항 관제탑을 찾았다. 비행기의 위치를 알리고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지막 교신이었다. 예정착륙시간(ETA)을 5분 남겨놓은 오전 10시52분 연락이 끊겼다. 레이더에서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추락한 U4-241의 기체는 사고 발생 사흘째인 27일 오전 보코르산 북동쪽 기슭(북위 10도50분980초, 동경 103도55분417초)에서 발견됐다.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30㎞ 떨어진 곳이다. 목적지였던 시아누크빌 공항에서 북동쪽 50㎞ 지점이다. 사고기에선 폭발의 흔적이 없었다.

조종사와의 교신 내용은 캄보디아 정부가 이날 한국 대사관에 알려온 것이다. 저공으로 비행하던 조종사가 보코르산을 넘기 위해 고도를 높이던 중 추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기상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저공비행을 했다는 얘기다. 훈센 총리는 "사고 원인은 기체의 기술적 결함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고 원인 조사 중=항공사고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으로 조종사 실수나 기체 결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TV 화면과 관련 보도 내용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유병선 한국항공대 교수는 "조종사가 밀림 위를 정상보다 낮은 고도로 날고 있었다는 사실로 봐 전형적인 CFIT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CFIT는 조종사가 정상적으로 조종하고 있다고 착각하다 일어나는 사고다. 1997년 8월 있었던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고가 대표적이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이 여객기가 실종되기 직전 "고도가 너무 낮다"고 사고기에 경고했으나 조종사가 "이곳 지형은 내가 잘 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비가 와 시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조종사가 자기 조종 실력을 너무 과신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비행기의 안전 관련 기기가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거나 오작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성연 전 대한항공 상무는 "첨단 항공기들은 정상 고도보다 낮게 비행할 경우 경보를 울려주는 항법장치가 있다"며 "이런 장치가 사고기에 있었거나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가 상대적으로 항공기 정비 수준이 낮아 항공기 안전관리에서 낙후된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사고 항공기가 이미 오래전 단종된 기종이어서 부품 조달이나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송병흠 한국항공대 교수도 "항공기 노화와 정비불량으로 인한 결함 가능성도 적지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사고 당시 동체가 폭발하거나 토막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밀림의 완충 작용을 꼽는다. 유 교수는 "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줘 기체에 상처는 많이 나지만 동체가 절단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른 전문가는 "밀림의 완충 작용이나 기체 상태를 봤을 때 구조가 빨랐거나 비행기가 좀 더 완만하게 비상착륙했다면 생존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캄포트.프놈펜=박종근.강기헌, 서울=강갑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