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사법처리” 신호탄/현대중 사장 등 사전영장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정치적 타결로 면죄” 기미에 쐐기/구속대상은 드러난 3명에 그칠듯
경찰청이 24일 현대중공업 최수일사장(56) 등 핵심관계자 3명에 대해 서울지법으로부터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섬에 따라 현대그룹의 국민당지원 비자금 사건 사법처리 절차가 본격화됐다.
경찰이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 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에 나서게 된 것은 정치적 타결에 따라 형사처벌을 면해보고자 하는 이들의 의도가 수사과정 여러곳에서 발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경찰이 지난달 28일부터 벌여온 현대그룹 5개 계열사 대선관여 사건 수사가 「선거용」이라는 일부의 지적과 비난을 씻기 위해서도 「용두사미」 처리를 피해야 한다는 판단이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부터 5백65억원의 비자금을 조성,국민당선거자금으로 건네준 것으로 경찰수사 결과 확인된 이 사건의 핵심관계자인 이들 3명은 6일 사건수사가 본격화되자 자취를 감췄었다.
정주영대표특보 이병규씨는 대선운동기간중에는 선거법상 선거운동원의 신분보장 조항을 방패로 경찰의 소환에 불응해왔으며 최 사장 등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6일이후 계속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특히 투표일이후인 19일부터 정치권에서 「화합의 차원에서 사소한 선거관련 시비는 논의치 않는다」는 기류가 일자 경찰과 약속했던 출두시일을 계속 미루며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이 21일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한뒤 경찰청을 방문,이인섭경찰청장에게 이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 것도 이와 같은 「유야무야 수사」 유도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경찰의 자체분석이 이같은 사전영장발부 모양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중인 현대그룹 계열사의 선거법 위반사건중 현대중공업 비자금사건이 현대와 국민당측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타 사건은 임직원들이 비교적 소액으로 투표권자에게 선심관광·향응제공 등의 행위를 한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사건은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 5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조직적으로 국민당을 지원했다는 것이 기업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이에 연루된 국민당 관계자의 형사처벌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에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돼 중한 처벌을 받은 것이 예상되고 국민당 이 특보 등 관계자들에게는 14대 대선과 관련,처음으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위반죄가 적용될 예상이다.
현행법상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는 중앙선관위에 기탁절차를 거치토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러나 이 특보가 책임을 지고 나설 경우 이 사건 관련 구속자는 이 특보와 최 사장·장 전무 등 3명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비자금의 행방이 확인된 것은 대여금고에서 압수된 1백34억원,정 대표 1백억원,국민당 전달분 20억4천만원 등 2백94억여원이며 나머지 2백60여억원의 행방은 수표추적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사전구속영장의 시효만기일인 내년 2월22일까지 이들의 검거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나 국민당사에 경찰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김우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