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양로원에 한국계 노인 많죠"|북해도 「해바라기장」 담당 의사 중국계 일본인 우메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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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고령화 사회 대책의 선진국 일본에 사는 노인은 행복하다고 말하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가족간의 갈등, 경제적 빈궁, 치매나 거동 불편 등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노인들은 어느 나라나 천대받게 마련이다.
북해도 중남부 히타카 (일고) 산맥과 가리카치 (수승) 고원 사이의 토카치 (십승) 지역은 산에서 흘러나온 양질의 천연수와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난 곳.
토카치지청 관내의 영세민을 위한 양로원 (양호 노인 홈)은 모두 23곳. 20개 지방자치제(시·정·촌)에 각 한군데 꼴로 있고 신도쿠정에만 귀가 먼 노인들을 위한 특수 시설을 포함, 3개가 있다.
내년으로 창설 20년을 맞는 신도쿠정 양호 노인 홈 해바라기장 (소장 사와구치 타다요시)의 담임 의사는 엉뚱하게도 중국인이었다.
원래 중국 광동성 출신인 그의 이름은 메이 팡 페이 (매붕비·62). 그러나 일본명 우메키 (매목)로 호적에 올려 귀화한지 20년째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매씨의 인생 유전도 중국 근대사의 변천만큼이나 파란만장해 중국 본토에서 혁명 직후 홍콩으로 갔다가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에서 의사 시험 합격, 일본 동경에서 수련의 생활을 한 끝에 이제는 북해도의 오지에 정착, 외로운 재일 외국인 생활을 하고 있다.
매씨의 안내로 돌아본 일본 시골의 전형적 양로원은 낡은 시설에 어둠 컴컴하고 좁은 객실 (6평 정도)로 훌륭한 편은 못되었다. 다만 관리가 철걱한 탓인지 어느 구석이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인상.
매씨는 기자에게 이곳에도 쓸쓸하게 혼자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이 1명 있다고 귀띔했다. 한방의 문을 열자 『의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라며 안경을 쓴 깡마른 노인이 반긴다.
82세라는 노인의 이름은 고바야시 긴이치 (소림김일).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가 이미 1910년대에 북해도로 건너와 토목 일을 했고 자신은 일본인 어머니와의 사이에 난 조선인 2세라는 거였다. 아버지의 성은 김씨.
불편한 것은 없느냐고 묻자 말동무가 없어 심심하다고 털어놨다.
매씨의 말에 따르면 북해도 관내 2백80군데 양로원 어느 곳에 가도 1∼2명의 재일 조선인을 볼 수 있으며 대개가 일제치하 강제 연행된 징용자거나 정신대원으로 보인다는 것.
매씨는 양로원의 수용인원 50명 정도가 한계이며 1년 예산 2억여엔 가운데 정부·지방자치제 보조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수용자들이 자신의 연금에서 출연, 메워간다고 살림살이를 실명했다. 따라서 월12만엔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바야시씨처럼 한푼도 내지 않는 무연고자도 9명이나 되었다.
근처에서 개인 병원을 하면서 주 2차례 정기 진찰을 하는 매씨는 『자신은 외국인으로 차별 받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처지를 외국 기자에 하소연했다. 일본인은 입으로는「개방, 개방」 하면서 외국인에게는 일자리도 마음의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관청에서 일본식으로 제멋대로 작성했다며 일본인 의사들은 우선 자신의 몫을 챙기고 나서 나머지 일만 던져준다고 털어놨다.
매씨는 사견임을 전제, 일본은 과거를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으며 언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면서 자위대의 해외 파병, 플루토늄의 반입, 극우 세력의 대두를 예로 들었다. 최근 일본 국왕의 중국 방문을 대부분의 재일 중국인은 반대했다고 전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한 경계의 눈을 같은 인접국의 국민으로서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외국 기자의 뜻밖의 방문에 좁은 서재에 가득 쌓인 신문을 일일이 뒤적이며 친절히 응한 매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일본 속에 사는 외국인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해도 오비히로 (대광)=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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