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통합 위한 불쏘시개 역할 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右)가 25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25일 여의도 모 호텔에서 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김근태 전 의장(열린우리당 탈당)은 두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취재기자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합류를 선언한 순간의 모습이다.

두 사람은 이날 배석자 없이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앞서 21일 만남에서 김 전 의장은 "나는 대권을 포기했다"며 손 전 지사의 범여권 합류를 설득했다. 이어 지난주 말 지리산행에서 돌아온 손 전 지사는 24일 김 전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야 한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결심 사실을 알렸다.

손 전 경기지사의 범여권 참여 선언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정면 돌파 전략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지 3개월 만에, 대선을 6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링 밖에서 지지세력을 더 모으는 대신 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자는 그 나름대로의 결단이란 게 캠프 측 설명이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 합류를 놓고 그 시기를 저울질해왔다. 그는 범여권에 합류하는 순간 친노 그룹에선 경쟁자로, 한나라당으로부턴 변절자로 협공을 받게 될 것이란 우려를 해왔다. "손학규씨가 어떻게 범여권이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격도 본격화할 것이란 얘기도 적지 않았다. 측근들은 그래서 "지금 가면 여러 주자 중 한 명으로 격하된다" "비토 세력에 쌈 싸먹힌다"며 조기 합류를 반대했다고 한다.

손 전 지사는 이 같은 비관론을 정면돌파 전략으로 뛰어넘으려 한 것 같다. 범여권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정통성 시비에 대응할 명분을 쌓고,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 적극적인 지원은 유보하고 있는 대통합파에게 자신을 지지할 명분을 줄 수 있다.

범여권을 후보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구상도 작용한 것 같다. 그는 범여권 후보중 여론 지지율 1위이지만 사실 조직이나 지지기반은 취약한 편이다. 세 대결이 벌어질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게 뻔하다. 주변에선 "범여권의 판도를 기존의 정파 중심이 아닌 후보 중심으로 재편하는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외부 인사라는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세 불리기에도 본격 나서고 있다. 김부겸 의원 등 지지 선언을 한 7명의 의원들은 이날 "7명의 난쟁이가 백설공주를 보호하듯이 손 전 지사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안영근 의원)고 다짐했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 통합을 위해 불쏘시개나 밀알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그의 범여권 합류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우상호 의원은 "두 분이 과거회귀적 통합에 반대했다"며 손 전 지사가 사실상 민주당.통합신당의 소통합이 아닌 대통합에 손을 들어줬다고 환영했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손 전 지사의 범여권 합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 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며 결단을 평가했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