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권력자의 측근·공신은 늘 껄끄러운 존재였다. 가깝고 공이 있는 만큼 대접해 줘야 하는데 지나치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스스로도 권력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삼가야 하는데 그 역시 지나치기 쉬웠다. 그래서 늘 말이 많았고 탈도 많았다. 태종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다.
옛날엔 관리로서 직책이 있는 사람만 봉록을 받았습니다. 공신과 제군(諸君)에게 전답과 노비를 하사해 물려받게 했으니 포상의 은전이 극진한데 봉록을 더함은 과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직책이 없는 군(君)들에게는 봉록을 불허하소서.”
권력자가 보다 못해 한마디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조실록이 전한다. 왕이 승정원에 내린 전교(傳敎)다.
“공신 등이 해이해져 공사를 게을리하다 징계당한 일이 있다 하니 널리 알려 경계토록 하라. 또 공신의 범법을 논죄하지 말라 했더니 뉘우쳐 깨닫지 못하고 그른 것을 알고도 고의로 범하는 경우마저 있다 하니 (…) 이후 법을 어기는 사람은 검거해 아뢰라.”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거나 처신이 바르지 못한 측근
‘신의 직장’은 어느새 ‘신도 모르는 직장’이 되고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됐다. 그러는 사이 2002년 195조원이던 공기업 부채는 지난해 300조원에 다가섰다.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바가지 안 쓰려면 한 패거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해 밝은 젊음들이 잘나가는 삼성·현대를 박차고 공기업에 몰려드는 이유다.
틈만 나면 공기업 혁신을 강조한 게 이 정부다. 대통령은 “공기업 인사를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었다. 결과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보다 지능화·고질화됐을 뿐이다. 대통령 말씀이 낙하산 줄을 더욱 견고히 하겠다는 얘기였나. 말이 말로써 그칠 뿐 나아진 게 없으니 오럴 해저드(oral hazard)라 이를 만하다. 하긴 오럴 해저드가 “대통령이 무분별한 발언을 해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가져오는 일”로 정의되는 게 현실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다시 말해 공기업의 부실은 국민의 짐이다. 공기업 적자로 공공요금이 오르면 피해는 국민이 본다. 비효율적 자원 분배로 민간기업의 발목을 잡으면 피해는 더 커진다. 공기업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시대 상황도 변했다. 공익 차원에서 공기업이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과감하게 민영화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없애는 게 낫다. 없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뒤치다꺼리할 일도 없다. 부문별로 나눠 민간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이 모양이 되기 전에 권력자는 말했어야 했다. “지위 높은 공기업들의 나태와 방만이 버릇이 돼 업무를 폐기할 뿐만 아니라 개혁과 혁신을 강구하지 않고 무사안일만 갖출 뿐이니 내가 심히 그르게 여긴다. 그 권장절목(勸奬節目)을 거듭 밝혀 시행하라.” 성종의 어명을 패러디해 봤다. 대통령을 왕이라 부른 이 있어 하는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