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C 속사정 얽혀 “엉거주춤”/해넘기는 UR협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정권교체로 「창구」 못정해 미국/농산물문제 불 강력 제동 EC
『유럽공동체(EC)는 EC대로,미국은 미국대로 내분을 벌이고 있다.』 주요국대표의 일원으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참가하고 있는 제네바주재 한국대표부의 박수길대사는 UR협상의 연내타결이 불가능한 이유를 한마디로 미·EC간의 내부문제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내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된 프랑스의 강력한 제동으로 EC는 농산물문제에 대해 여전히 엉거주춤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미국 역시 내년 1월20일로 예정된 클린턴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확실한 행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UR협상을 마무리짓고 물러날 것을 부시행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미국내 보수세력의 여론이라면 진보세력은 협상권한을 클린턴 신행정부에 넘기라고 주장,미국내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나 EC의 협상대표들이 정치력을 발휘,조기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은 국내법과의 조화문제를 내세워 미국 스스로 합의한 다자간무역기구(MTO)신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와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앞으로 설립될 UR체제 유지를 감시하고 국가간 무역분쟁을 조정·중재하는 본격적 국제무역기구로서 MTO가 가동될 경우 더이상 미국은 슈퍼301조처럼 국내법에 따른 일방적 보복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UR협상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MTO의 신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입장변화를 시사함에 따라 이 문제가 UR협상 참가자들 사이에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걸린 쌀시장 개방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본격적 타결시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UR협상 타결이 내년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 내년에도 조기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협상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 미 의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신속처리 권한의 실효전에 협상을 끝내기 위해서는 늦어도 내년 2월말까지는 모든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하지만 ▲클린턴행정부 등장 ▲미국 협상팀의 교체 ▲EC주요 집행위원교체 등 여건변화로 협상 자체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당장 쌀시장을 개방하느냐,마느냐는 문제가 걸려있는 우리로서는 협상타결이 지연되는데 일시적으로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협상이 계속 늦어져 미 의회가 1년이고,2년이고 신속처리법안 발효시한을 연장하게 될 경우 미국은 이미 합의된 내용들에 대해서까지 모두 세심한 재검토를 주장하는 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경우 앞으로 협상을 맡게될 클린턴행정부가 전보다 훨씬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제네바=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