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길레라 “나, 이 공연 보려고 태어났나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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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했다. 이 시대 엔터테인먼트의 최고수가 달라 붙어 연출한 무대였다. 23,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첫 내한공연은 팝의 정상에 선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이제 내한 공연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하지만 그간 한국을 찾은 대부분의 뮤지션은 인생의 정점에서 한 두발 아래로 내려섰거나, 이제 성공의 노를 젓기 시작한 이들이었다. 반면 아길레라는 지금 음악과 커리어 양쪽 모두에서 절정에 있다. 그런 뮤지션이 최고의 공연과 무대연출을 보여줬다.

23일, 공연 예정시간인 오후 7시를 한참 지난 8시20분. 장내의 불이 꺼졌다. 압도적 카리스마와 목소리가 1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Ain’t No Other Man’을 시작으로 앙코르 없이 90분 동안, 아길레라는 마지막 곡인 ’Fighter’까지 총 22곡을 들려줬다. 그녀는 20세기 초의 정숙한 카바레 싱어, 기둥을 타고 남자를 유혹하는 스트립 댄서, 서커스의 여주인공과 가면 무도회의 파티 호스트로 계속 변신했다. 8명의 댄서, 12인조 백 밴드와 함께 뮤지컬·서커스 등 모든 대중공연문화가 총동원된 엔터테인먼트의 결정판을 보여줬다.

그녀의 최근 앨범제목이기도 한 ‘Back To The Basic’이 이번 투어의 타이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위대한 옛 것’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빌리 홀리데이·제임스 브라운·아레사 프랭클린 등 전설이 된 거장들의 모습과 그들 시대의 생활상이 무대에서 되살아났다. 온고지신이라고 할까. 아길레라는 그 속에서 흑인의 성대를 이식한 듯 압도적인 성량을 뿜어냈고, 세 개의 허파를 가진 듯 격렬한 춤을 소화했다. 임신 3개월의 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위대한 전통을 계승할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아길레라는 공연 전 e-메일 인터뷰에서 “태어나서 꼭 봐야 할 공연이 될 것”이라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 이 공연 보려고 태어났나 봐”라며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여성관객을 봤다. 넋 나간 표정이었다. 객석에는 오프닝을 맡은 아이비를 비롯, 특급 연예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 또한 그랬을 것이다.

김작가<대중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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