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열경고, 증시 멈칫 핑계 김에 쉬어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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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8면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 격언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FRB는 정부의 금융ㆍ통화 정책을 상징한다.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구두 개입으로 시장에 시그널을 던질 때는 일단 순응하고 보는 게 이롭다는 얘기일 게다.

지난주 한국 증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노 대통령은 개인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빚을 내 주식투자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도록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곧바로 대응책이 일사불란하게 쏟아졌다.

노 대통령이 ‘유능한 관료’라고 칭찬했던 김석동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 총대를 멨다. 그는 “주가상승이 경기회복 속도에 비해 빠른 측면이 있다”며 “개인의 주식 신용거래 등을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총액대출한도 축소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한덕수 총리는 공기업 주식을 시장에 공급할 뜻을 밝혔다. 또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들에 신용융자를 자율 축소토록 지시했다.

사실 노 대통령의 증시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경제를 망쳤다는 소리가 나올라치면 “주가가 이렇게 많이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받아치곤 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펀드에 가입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대통령의 시각에서 최근 증시는 걱정스러워 보였을 법하다. 차분하게 오래 올랐으면 좋으련만, 단기간에 너무 달아올랐다가 푹 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시장은 일단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주말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조정다운 조정’이 드디어 펼쳐졌다. 코스피지수는 15주 연속 상승행진을 마감했다.

따지고 보면 증시는 오랜 강행군에 꽤 지쳐 있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부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시차가 있었을지언정 조정에 들어갔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7월 초쯤 기업들의 상반기 실적 윤곽이 드러나는 때를 조정 타이밍으로 봤지만 다소 앞당겨졌을 따름이다.

때마침 중국ㆍ미국 등 해외 증시도 일제히 숨 고르기에 들어가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큰 수익을 낸 한국 주식을 대거 처분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증시는 내친김에 더 쉬어가는 모습을 연출할 전망이다. 15주 연속 올랐으니 몇 주간 쉴 만도 하다. 과거 대세 상승장에서도 항상 그랬다. 쉬는 참에 증시 주변의 투자여건을 다시 따져볼 일이다. 경기회복과 기업실적 개선 흐름에는 이상이 없는 것인지, 반도체 가격은 과연 바닥을 쳤는지, 글로벌 유동성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는지 등등. 이번 주에는 월말을 맞아 이런 것들을 점검하기 좋은 국내외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된다.

증시 조정기에는 주가가 급등락하며 널뛰는 경향이 있다. 뒷북을 몇 번 쳤다가는 큰 손실을 보기 일쑤다. 새롭게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펀드를 사서 길게 보고 묻어두는 투자자세가 바람직해 보인다. 3년 이상 장기 수익을 낸 고참펀드들 중에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펀드를 골라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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