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실상 꼼꼼히 짚어볼 터"|한수산 소설 『해는 뜨고…』 연재 앞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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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일제 식민지 시대는 우리에게 가장 캄캄한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들어봐도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개인 개인이 한줌의 빛도 없는 캄캄한 굴속을 지나는 이야기들뿐입니다. 그 편편의 이야기들이 역사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캄캄했던 시대의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분노와 눈물, 회한 등으로 때로는 가슴을 치고 때로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나가겠습니다.』
한수산씨(46)가 93년1월4일부터 본지에 장편 『해는 뜨고 해는 지고』를 연재한다.
72년 단편 『4월의 끝』으로 문단에 나온 한씨는 『부초』 『해빙기의 아침』 『욕망의 거리』 등 총32권 분량의 작품을 발표하여 70, 80년대 독서 계를 이끌었었다.
짙은 감성과 화려한 문체로 인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한씨는 밀려드는 원고 청탁을 피해70년대 말 제주도로, 다시 88년8월 일본으로 떠났다.
한 작품의 사소한 표현이 권부를 욕했다며 자신에 모진 고문을 가한 정치 현실이 싫고, 또 작가로서의 재충전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한씨가 지난 9월 귀국, 제2의 작가적 삶을 시작하며 내놓게 될 작품이 『해는 뜨고 해는 지고』다.
『일본에 한 4년 머무르다 보니 무조건 「왜놈 나쁘다」 「왜놈 나쁜 놈」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제시대 때 저지른 「실상」, 그 만행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에겐 그 시대의 자료가 많지 않지만 일본에는 많이 있습니다.
기록이나 문서로도 많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도 그 곳에 남아 살고 있는 우리 민족, 재일 교포들이 바로 일제의 산 증거들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끌려와 죽도록 착취당하다 해방을 맞았으나 귀국할 능력이 없어 눌러앉은 사람, 자신의 능력으로 일본에 건너와 노예보다도 더 서러운 동족을 착취하다 그 죄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
일본에 머무르며 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소설로 써 나가려 합니다.』
한씨는 한 시대를 복원한다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결코 소설적 감동은 놓치지 않겠다고 한다.
요 시대는. 가장 어두웠을지라도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통·눈물·회한은 감동적이게 마련 아닙니까.
어두웠던 역사일지라도 그것을 감동으로 전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고』는 1940년, 태평양전쟁을 전후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간 사람들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징용으로 끌려와 무인도 탄광에 갇힌 사람들, 거대한 조선소에 갇혀 전함을 만든 사람들, 자진해 일본으로 들어가 함바(반양) 등을 세워놓고 동족을 상대로 장사·착취하는 사람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국가란 무엇이고,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이었던가를 묻게된다.
자료나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고발이나 역사의 차원을 넘어 『해는 뜨고 해는 지고』는 소설적 차원, 따뜻한 인간의 피가 도는 감동적 차원으로 독자들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제2의 작가적 삶을 시작하며 내놓는 작품이어서 솔직히 겁납니다. 또 직접 그 시대를 살아내지 않은,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여서 겁이 납니다. 해서 독자 여러분들과 같이 써나가는 소설이 됐으면 합니다. 연재를 하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생생한 체험의 이야기들을 들었으면 합니다. 어둡고 무거운 과거였지만 피가 도는 이야기들로써 그 시대를 한번 반추해봅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일본을 이겨냅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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