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깨끗한 대선캠페인(국운걸린 공명선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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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권근절은 시민손에/날뛰는 탈법… 감시·단속으론 한계/검은돈 안받는 「한표 자존심」필요
국운이 걸린 공명선거는 뭐니뭐니해도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선관위와 중립내각이 제아무리 촘촘한 단속망을 가동해도 바람빠지듯 그물을 새나가는 불법·탈법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정당·후보들의 은근한 손짓을 뿌리치고,선심관광이나 시계 등 금품제공을 노골적으로 하는 사조직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것만이 숙원인 공명선거를 담보할 수 있다.
때마침 시민들의 공명선거에 대한 의지와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선진선거문화 정착에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다. 유세장을 찾은 시민들의 상당수는 부정을 저지른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모당의 충북 제천유세장에 나온 전재복씨(47·회사원)는 『인신공격하는 후보는 반드시 표로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달 23일 또다른 당의 경기 이천유세에서 이경호씨(52)는 『거짓말 등으로 국민을 얕잡아보는 행태를 보이는 후보는 1차적 배제대상』이라고 말했다.
더더욱 바람직한 것은 이처럼 수준높은 시민의식의 조직화가 크게 진전되고 있는 점이다. 지난해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흥사단 등 7개 시민운동단체가 한데 뭉쳐 만든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는 지금까지 계속 세포증식을 거듭,현재 전국 60여개 지역에서 무려 5백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강력한 시민운동조직으로 성장했다.
지난 3·24총선을 거치면서 검찰·선관위·정당으로부터 중립성을 인정받은 공선협은 지난달 9일 선거부정 고발창구를 개설,감시운동과 공명선거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다. 공선협은 고발센터를 선거일까지 휴일없이 거의 24시간 상시가동,고발건에 대해서는 즉각 조사에 착수해 신빙성이 있으면 곧바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계획이다.
6일 현재 시민·정당이 공선협에 고발한 불법사례는 모두 3백38건. 유형별로는 금품·향응제공이 97건으로 가장 많고 사조직·외곽조직 동원 61건,후보비방 및 불법홍보 75건,입당강요 20건,관권개입 20건,사랑방 좌담회 이용 탈법선거운동 23건,기타 38건 등이다. 중립내각 영향탓인지 관권개입은 현저히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후보들의 거듭된 공명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수면아래에서는 불법이 적지않게 자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선협은 이제까지 고발된 사안중 조사결과 신뢰할만한 11건을 우선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공선협은 또 전국 여러지역에서 매주 1∼2회의 가두캠페인을 벌이고 「관권개입 근절,금품·향응거부」「지역감정 극복」 등의 구호가 적힌 스티커·배지 등을 싼값에 판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달 20일부터는 전국 각 지역에서 관계기관장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공명선거실천 다짐을 위한 시민잔치」를 열어 공명분위기 확산을 기도하고 있다. 25일에는 노총산하 20개 산별노련소속 노조조합장 3백50여명을 초청해 선거 적극 참여 및 불법감시운동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공선협은 전국 각 대학에 「대학공선협」을 구성,대자보 등을 통해 대학생의 일당동원 자제 등을 촉구하도록 하고 있다. 대학입학 원서접수 마감날인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신촌로터리에서 입시생·학부모 등을 상대로 가두캠페인을 벌인 연세대 김태선군(22·사회사업학과)은 『대학생이 돈에 현혹돼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은 대학인의 긍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흥분했다. 그는 또 『그러나 학내는 전체적으로 불법과는 거리가 먼 안전지대』라며 그동안의 캠페인이 상당히 만족스런 효과를 거두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명선거 감시의 기치를 내건 일부단체나 그 구성원이 중립성을 가장,의도적으로 편파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선관위의 한 당국자는 『몇몇 단체는 국민적 입장 또는 기계적 균형을 내세워 특정세력을 음해하는 쪽으로 활동함으로써 타일방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말그대로 공명선거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공선협에 대해 일부 간부가 공명선거에 어긋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국무총리실의 잘못된 발표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남정판총리공보비서는 『공선협 간부가 아니라 일부 경향성 있는 단체의 거론을 공선협으로 잘못 발표했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중립성을 확고히 인정받고 있는 공선협은 공명선거활동을 더욱 강화,이제까지 인력·기자재 부족으로 실시하지 못했던 유세 감시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공선협의 이같은 저인망식 감시운동에도 한계는 있다. 현재 후보들간에 금권선거운동 시비가 급증하고 있듯 불법은 한층 더 「낮은 포복」자세로 유권자들에게 접근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 모두가 「진날 나막신」이 되겠다는 확고부동한 공명의지가 더욱더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한빈 공선협 상임공동대표는 『시민들이 「바라지 말고,받지 말고,먹지 말자」는 등으로 자존심을 철저히 지키고 반드시 공명선거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면 불법·부정이 제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발붙일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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