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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감청설비 의무화' 부작용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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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 국회에서 논의 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법률안은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통신사업자들에게 감청 설비의 구축을 의무화하고 통신사실 확인 자료를 최대 1년간 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정보수사기관에 의한 감청설비의 오.남용과 통신사실 확인 자료의 불법 유출에 대한 우려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날로 지능화돼 가는 각종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합법적 감청과 통신사실 확인 자료 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감청 설비를 구축할 경우 정보수사기관에 의한 불법 감청이 일어날 여지가 분명히 있다. 따라서 최근 세계적 추세는 감청 설비는 통신사업자에 의해서만 운용되도록 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통신사업자로부터 감청된 관련 정보를 제공받도록 하고 있으며 설비에의 직접 접근을 막고 있다. 개정법률안이 이러한 추세를 따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과 결탁하거나 임의로 감청 설비와 통신사실 자료를 멋대로 이용할 우려도 있다. 이에 이미 감청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일부 국가는 암호화 기술 등을 이용해 시스템 운용자라 할지라도 민감한 정보를 마음대로 삭제.변경할 수 없는 특수한 저장공간에 기록하게 하는 등 다양한 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감청 설비 운용과 통신사실 확인 자료에의 접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로그기록 장치를 운용함으로써 법 규정을 무시한 오.남용 사례를 막도록 하고 있다. 로그기록 정보를 조회하면 민감한 설비와 저장 정보에 대한 접근과 유출 시도가 확인 가능하므로 불법행위에 대한 확인.예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한 기술 표준 제정 과정에 통신 사업자, 장비 개발자,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도록 해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통신 국제표준 제정단체인 ITU-T에서 감청에 대한 세계 표준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감청법, 독일의 전기통신 감청기술지침, 네덜란드의 감청설비 보안지침, 유럽연합의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지침 등에서 이러한 오.남용 문제에 대한 제도적.기술적 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민간 표준단체에 의해 제정되고 있는 기술표준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따른 오.남용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과 동시에 법 시행령 등의 하위 규정에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세부 기준을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감청기술 표준에 대한 연구 및 표준화가 필요하다.

강신각 한국전자통신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