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지하 매설공사|백석기<한국정보문화센터 본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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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시내 교통난은 이제 한계에 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더 짜증나는 일은 도로 한복판을 시도 때도 없이 파헤치는 건설공사로 교통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화·전기·가스·상하수도의 파이프를 묻는 일에서 지하철·지하도·도로확장이나 재 포장 공사 등 이 연중 내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사는 독립된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어 제각각 독자적인 건설계획·예산·시공일자·방법 등을 정하고 자기 일정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일반시민의 불편은 제쳐놓더라도 이것처럼 비능률·불 합리·낭비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이왕이면 담당기관들이 모여 날짜·진로·공사방법을 체계화해 공동으로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몇 년 전부터 주요 건설공사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매핑시스템(Mapping System)이란 것이 이용되고 있다. 공장 하나를 건설해도 주위의 산과 하천 등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건물위치는 어디에 두고. 도로는 몇 갈래를 어느 쪽으로 내며, 상·하수도 등 지하매설물은 어떻게 묻어야 가장 편리하면서도 경제적인지를 시스템 적 시각으로 종합해 그려내는 것이다. 컴퓨터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모의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다음 그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골라 그것도 아주 빠르게 데 시해 줄 수 있다. 작게는 교통지도·지하매설물지도를 만드는 일부터 크게는 신도시 건설이나 아파트단지·공단건설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까지 그 쓰임새는 아주 다채롭다.
그러나 매핑시스템은 정보사회가 가고 있는 네트워크사회의 체질에 맞게 고안된 것이다.
이 사회는 아무리 전문화된 업무가 한없이 갈라져 있어도 기능상으로는 전체가 하나처럼 통합 운영되는 상호협력 구조로 돼 있다.
우리 같은 중진국이 선진국을 따라 잡는데 가장 애를 먹는 것은 새 기술의 기적을 눈앞에 보면서도 관습·제도가 못 따라와 부득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우리나라가 지하매설공사하나도 통합 추진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조직체계가 산업형 대량생산 체제에나 맞는 단순 분업형을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모든 일은 점점 넓고 복잡한 그 물망으로 엮어질 것이다. 여기에 적응해 살아가려면 행정조직이나 기업구조·개인생활에서도 이기적·단편적이 아닌 상호협력의 공존체제에 익숙해지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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