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복사기·컴퓨터등 이용 첨단화/CD사건으로 본 유가증권 위조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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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짜 인쇄 막는 안전장치 개발 시급
화폐나 유가증권의 제작기술은 역설적으로 위조·변조기술에 「쫓겨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천연색 복사기와 컴퓨터를 이용한 인쇄기술의 등장으로 화폐나 유가증권의 위조 수법이 더욱 다양해지고 첨단화하고 있어 이보다 몇발짝 앞서가기 위한 화폐·유가증권의 인쇄기술도 숨가쁘게 발전하고 있다.
사실 기술면에서 보면 이번 CD위조 수법은 매우 조악한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컬러복사기를 이용해 자기앞수표도 진짜와 거의 다름 없이 위조하는 마당에,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백모조지)에 오프셋 인쇄기로 간단히 찍을 수 있는 CD의 위조는 일단 작심한 사람에겐 매우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위조·변조는 화폐는 물론 채권 등 유가증권·복권·야구장입장권·골프장회원권·우표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만한 모든 것이라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81년 가계수표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는 가계수표 위조가 한때 기승을 부렸었다. 처음에는 진짜수표와 한눈에 구별될 만큼 인쇄가 조잡하던 것이 불빛에 비추면 나타나는 음화만 없을뿐 진짜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88년엔 컬러복사기로 위조한 자기앞수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목포에서 발견됐다. 이때부터 컬러복사기 보급확대로 인한 위조를 방지하는 일이 조폐당국의 급선무로 떠올랐다.
조폐공사가 이를 막기위해 도입한 기술은 천연색 복사기로 복사할 경우 특수잉크로 인쇄된 숨어있는 부분이 노출되는 잠상기법이었다. 예컨대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자기앞수표는 복사할 경우 오른쪽 빈칸에 물음표(?)가 흰색으로 나타나 즉시 식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국내에 보급된 컬러복사기는 2백대 정도인데,지폐도 완벽하게 복사할 수 있는 완전컬러복사기는 조폐공사 등 특수기관에 연구용으로 몇대가 들어와 있고 대부분은 흑·적·청색 등 3∼5가지색의 단색으로만 복사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컬러복사기를 구입할때는 한국은행과 경찰당국에 반드시 신고를 해야하고 화폐나 유가증권의 복사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위조를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부족하다. 일본은 지폐에 감응하는 메모리장치를 복사기 내부에 만들어 지폐를 복사할 경우 원천적으로 아예 복사가 되지 않게 만들거나,복사가 됐더라도 어느 복사기에 복사됐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개발해놓고 있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열사람이 도둑 한놈 못막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10년 걸려 개발한 기술을 위조범들은 2∼3년이면 비슷하게 흉내내는 수가 많다』며 『당국의 정식요청이 있는대로 위조방지를 위한 새 CD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정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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