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치주의(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70년대말 두차례에 걸쳐 유럽여행을 한 서양사학자 김성식교수(86년 작고)는 그 때의 여행기를 두권의 책으로 냈다. 첫번째 여행기는 『내가 본 서양』이고 두번째 여행기는 『역사와 우상』(정우사간)이었다.
두번째 책이름을 『역사와 우상』이라고 한 것은 이 여행기의 상당부분이 독일에 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김 교수는 보통 관광객은 엄두도 못낼 산간 오지 세곳을 여행했다. 한곳은 지부르크의 루르강을 끼고 있는 초원의 야산으로 빌헬름1세의 기마동상이 우뚝 서 있는 곳이고,또 하나는 토이토부르거의 산림으로 헤르만의 동상이 서 있는 곳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켈하임이라는 남독의 작은 도시에서도 십리나 더 들어간 수림속인데 웅장한 해방당이 있는 곳이었다.
알다시피 빌헬름1세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등용,독일통일을 완성한 영주고,헤르만은 기원1세기 로마군단을 독일영토 밖으로 몰아낸 최초의 독일통일 영웅이다. 그리고 바이에른왕 루드비히1세가 세운 해방당은 1813년 프로이센·프러시아·오스트리아연합군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한,이른바 해방전쟁의 승리를 기념한 건조물이다.
이런 거대한 역사적 모뉴먼트를 광장이 아닌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궁벽진 산간오지에 신비롭게 건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그것을 독일인의 역사의식으로 풀이했다. 영국인은 역사를 현실화해 생활에 직결시키는데 반해 독일인은 역사를 이념화·이상화해 비현실적인 우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역사의 우상화는 역사의식을 마비시키기 쉽다. 지나간 시대를 우상화하는 것은 바로 자기시대를 비하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자기멸시와 열등감에 빠지게 한다. 요즘 독일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검은 머리의 외국인은 가능하면 혼자 길을 걷지 마라.』『특히 옛 동독지역을 조심하라.』 모든 최근 극성을 떨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극우테러를 경계하는 말이다. 실제로 엊그제 북해인근 소읍에서는 이들이 외국인 아파트에 화염병을 던져 터키계 여성 세명이 참사한 사건이 있었다. 신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신봉한 비뚤어진 역사의 망령 히틀러를 새로운 우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독일로 하여금 두차례 대전의 비극을 겪게 했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