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의 연예인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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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예를 뜻하는 영어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는 본래 「접대한다」「즐겁게 한다」는 뜻에서부터 출발했다. 즉 연예는 그 자체가 이미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로는 궁중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잔치나 이런저런 행사때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혹은 흥을 돋워주기 위해 동원됐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곡마단이 공연을 벌이기에 앞서 손님을 끌기 위한 간단한 쇼를 선보인다든가,거리의 약장수들이 약을 팔기에 앞서 노래와 만담 등 여흥행사로 손님의 흥을 돋웠던 것도 일종의 연예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연예인,혹은 연예활동과는 다소 구별돼야 하겠지만 스포츠 경기장의 치어리더(cheer leader)도 선수와 관객의 흥을 돋운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5공시절 운동권 학생들을 이끌면서 흥을 돋우던 사물놀이 등 이른바 노래패들도 마찬가지다.
연예행위의 속성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데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대중 조작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각종 캠페인을 벌일때 연예인들이 동원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게 되기도 한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선거때 연예인들의 역할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본격적인 대통령선거전에 접어들면서 유세장에 연예인들이 동원돼 연예활동을 벌이는 행위가 새삼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정 후보자를 위한 유세장에서의 연예활동을 일종의 기부행위로 볼 수 있느냐,없느냐 하는 것이 중앙선관위의 고민인 모양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정치활동을 못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에 당선하여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들이 자기 당 후보를 위해 찬조연설을 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선거운동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연예인들이 유세장에서 청중동원을 위한 연예활동을 벌였을때 발생한다. 연예활동은 그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유세가 「잔치」라면 손님을 끌어 흥을 돋워주려는 그들의 행위에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선거유세는 잔치가 아니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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