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호텔선 언행 조심을…(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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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예술단원 요란한 차림에 “창녀” 곤욕
러시아 모스크바의 각 호텔에는 세종류의 문지기들이 호텔을 항상 철통처럼 지키고 있다. 첫째는 서구식 일반 호텔의 문지기들처럼 문에 늘어서 있다가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서비스를 하는 문지기들이다.
둘째는 호텔측이 용역계약을 해 고용한 일종의 보안 요원들이다.
이들은 보안요원이란 명찰을 차고는 호텔내의 외화상점과 술집·환전소 등을 드나드는 비 투숙객들을 위협적인 눈초리로 노려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출입증이 없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기도 한다.
이들은 또 가끔씩 호텔내에서 행패를 부리려는 주정뱅이들과 외화벌이에 나선 창녀들을 통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창녀나 마피아 조직들과 결탁해 자신들의 조직원들을 호텔내에 출입시키고 이들로부터 돈을 뜯거나 정기적인 상납을 받는다.
셋째는 호텔내에 상주하고 있는 기관원들이다.
내무부나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 같은 기관의 기관원들이 호텔에 투숙한 외국인들의 동정을 살피거나 내국인들의 동태와 행동을 감시한다.
이렇게 많은 조직이 호텔내에서 위세를 과시하고 있는 이유는 모스크바의 생활난 속에서 호텔내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식품들과 외국물건·술 등이 풍부하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조금 요란하게 옷치장을 한 내국인의 경우는 무조건 창녀로 몰아붙여 일단 출입증을 요구하고 출입증이 없으면 방문기관이나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그 사람이 직접 내려와 용무가 있음을 확인시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얼마전 한국의 한 공연단체가 요란한 치장의 단원들을 이끌고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었다.
이국이란 흥분감과 국제 최고수준의 예술역량을 갖고 있는 러시아에서 공연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 공연단의 단원들은 연습보다는 이국의 정취를 찾는데 더 열심이었다.
그러다 이 공연단의 한 여단원이 밤늦은 시각 요란한 옷차림에 술까지 취해 호텔문을 들어서다 창녀로 오인돼 곤욕을 치렀다.
이 한국인 단원은 호텔문지기에게 욕을 마구 해대고 떠났지만 요란하고 단정하지 않은 옷차림의 자신에게도 책임의 일단이 있음을 끝까지 깨닫지는 못한 것 같았다.<김석환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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