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아들과 딸』|60년대 농촌가정 재현 성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는 낮은 슬레이트지붕. 볕에 말리기 위해 빨간 고추를 널어놓은 앞마당. 흙담 너머로 멀리 내다뵈는 샛강. 벽에 걸린 낡은 모자이크 흑백사진틀.
60년대 우리나라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촌가의 가을풍경이다. 동시에 지금의 30∼40대에게는 깨어진 유년의 꿈이 간직된 추억의 뜰이다.
MBC-TV 주말연속극『아들과 딸』은 주말저녁마다 이 유년의 뜰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시청률 조사에서 방송 5회째부터 줄곧1위를 고수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이 드라마는 재치 있는 야외 촬영장소 물색과 세심한 소품으로 극중 배경인 60년대 농촌의 한 가정을 사실감 있게 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쌍둥이 오누이가 남아 선호사상의 신봉자인 어머니 밑에서 명암이 교차되는 성장과정을 겪는다는 극의 내용도 시청자 누구나가 한번쯤 유사한 체험을 했을법한 친근한 소재다.
등장인물들도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모습들이다. 극 전개의 중심축인 후남 어머니(정혜선분)는 무식하고 드세고 변덕스럽지만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시던 그리운 어머니, 한국남자들을 과보호아로 길러낸 징그럽도록 자상한 우리들의 어머니다. 교복차림의 남녀 주인공 최수종과 김희애도 나의 사진첩에서 보던 옛 친구의 모습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원형에 가까운 자신의 유년을 돌려 받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되는 것이다.
『아들과 딸』의 성공비결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은 파스텔화 같은 전원풍경을 자주 삽입해 얻고 있는 짙은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은「남아선호 사상의 정면거부」라는 강한 메시지를 부드럽게 극중에 녹여 전달한다. 때문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설정한,「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딸에 대한 이유 없는 구박」이라는 자칫 식상하기 쉬운 과장된 양극구도도 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의 앵글을 극 밖의 자연으로 돌려 서정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청자와 극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시켜 주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서를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병적인 사랑 놀음을 다룬 드라마들이 판치는 현실에서 화석이 된 우리의 추억을 아름답게 살려내 주가를 올리고 있는『아들과 딸』은 분명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남재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