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ㆍ햇빛ㆍ바람을 무서워한 林彪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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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26면

1949년 2월 공산혁명에 성공해 베이징에 입성한 린뱌오 동북야전군 사령관(가운데). 사진=김명호 제공

1966년 10월 장칭(江靑)이 중화인민공화국 원수이며 부총리 겸 국방부장인 린뱌오(林彪)를 찾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장칭의 말에 린뱌오는 “물(水)은 차가운 성질(寒性)이다. 찬 기운이 모공을 통해 진입하면 내장의 더운 기운(火)과 충돌해 모순이 발생한다. 그게 감기다. 나는 58년부터는 목욕을, 63년부터는 세수를 하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물을 무서워한 그는 산수화(山水畵)만 봐도 식은땀을 흘렸다.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4]

50년대부터는 복장에 관심이 많았다. 모양이나 색상이 아니라 옷의 온도였다. “0.5도 차이만 나도 냉기를 느끼거나 땀이 난다. 온도의 장악이 건강의 관건이다”라고 했다.

그는 부동자세로 보고하는 것을 싫어했다. 긴장해서 땀이 난다고 했다. 빛을 무서워해 어두운 방 안에 있기를 좋아했다. 집무실도 없었다. 잡기는 해본 적도 없고 배우려 하지도 않았다. 운동과 등산은 원래 싫어했고, 사냥이나 낚시는 할 줄도 몰랐지만 물과 햇빛ㆍ바람을 무서워했기에 할 수도 없었다. 아는 노래가 한 곡도 없었고 주말마다 열린 중난하이(中南海) 댄스파티에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TV와 신문은 보지 않았다. 의학사전과 지구의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

맹물에 데친 배추를 주로 먹었고 누런콩(黃豆)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다. 딸의 애칭도 더우더우(豆豆)였다.

린뱌오는 중국 역사에 남을 명장이었다. 중일전쟁 때 핑싱관(平型關) 대첩(大捷)을 지휘해 중국인들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었고, 국공 내전에선 랴오선(遼瀋) 전역(戰役)에서 승리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톈진(天津)을 점령하고 베이징(北京)을 해방한 것도 그가 지휘한 동북야전군이었다. 스탈린은 그를 상승(常勝)장군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을 거부했다. 마오쩌둥(毛澤東)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통증이 있거나 병상에 누워야 할 병은 아니었다. 긴장ㆍ설사ㆍ식은땀 등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정신병자로 낙인이 찍혔다.

환자로 위장해 자신을 보호하고 상황을 저울질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 정치행위 중 하나였다. 린뱌오가 정신병자였는지, 아니면 관직이 올라갈수록 더 청교도적이며 고행승(苦行僧) 같았던 생활습관 때문에 정신병자로 보였는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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